람 이매뉴얼 주일 미국대사가, 미국이 주도하는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에 "일본, 네덜란드와 함께 한국도 동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매뉴얼 대사는 9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한국과 일본, 네덜란드 등과 대중국 반도체 수출 통제 동참 관련 논의를 진행 중"이라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이어 "일본뿐 아니라 한국을 통해 작업해야 하는 게 있고, 네덜란드도 통해야 한다"며 "당사국 모두가 합의할 필요가 있어 많은 작업이 필요할 것"이라고도 강조했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10월 중국에 첨단 반도체와 제조 장비 판매를 제한하는 강경한 조치를 내놓았다. 중국 정부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고, 이런 조치가 글로벌 공급망의 안정성을 위협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한국 △네덜란드 △일본이 대중국 규제에 협력하기를 희망하는데, 이 중 일본과 네덜란드는 원칙적으로 동참하기로 했다고 지난달 블룸버그가 보도했다. 보도가 사실이라면 한국만 남은 상황인데, 이매뉴얼 대사가 “모두 동참해야 한다”며 압박한 셈이다.
이매뉴얼 대사는 “모든 당사자들이 협상 테이블에 있고, 결과에 대해 상호 공통된 이해관계를 갖고 있다”면서 “각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서로 다른 분야에 강점을 갖고 있으므로 최종 합의는 양자 간이 아니라 다자간에 도출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강점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세계 유수의 반도체 제조업체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네덜란드에는 EUV(극자외선) 노광장비를 생산하는 ASML이 있으며, 일본엔 반도체 제조에 필수적인 소재와 장비를 생산하는 업체가 많다. 반도체 글로벌 공급망의 각자 다른 위치에 있는 국가들이 합심해 규제를 적용해야 효과적이라는 게 미국 측 주장이다.
이매뉴얼 대사의 인터뷰는 10일 오전 이도훈 외교부 2차관과 호세 페르난데스 미 국무부 경제성장·에너지·환경 담당 차관이 양자 협의를 하기 전날 게재돼 주목을 받았다. 외교부에 따르면 차관 협의에선 반도체와 핵심 광물 공급망에 대한 협력 상황 점검도 이루어졌다.
중국은 한국의 수출 통제 동참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인 글로벌타임스는 9일 자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대중 규제에 부분적으로 동참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앞으로 면밀히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반대 방향으로 한국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한국 외교부는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에 대한 구체적 언급을 꺼리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 대변인은 '모든 당사자들이 협상 테이블에 있다'는 이매뉴얼 대사의 발언에 대해 “한국 정부는 미국의 대중 수출 제한에 참여하는 것과 관련해 미국과 논의하고 있지 않다”며 부인했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일본 정부는 '미국과 관련 내용을 논의 중'이라는 이매뉴얼 대사의 발언을 부인하지 않았다. 하지만 오는 13일로 예정된 미일 정상회담을 앞두고 협상이 마무리 단계인지에 대한 질문에는 구체적 답변을 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