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위 뇌전증’ 병역 비리에 연루된 병역 브로커가 구속됐다. 앞서 구속 기소된 또 다른 병역 브로커 구모씨 아래서 일했던 인물이다. 의사 소견에 의존하는 뇌전증 판정 특성상 검찰 수사가 병역 브로커와 의뢰인을 넘어 의료계 전반으로 확대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서울남부지법 홍진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9일 병역법 위반 혐의를 받는 브로커 김모씨에 대한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증거 인멸 및 도주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앞서 5일 서울남부지검은 김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검찰은 김씨가 병역 면탈을 원하는 의뢰인 10명을 상대로 허위 뇌전증 진단을 받도록 알선하고, 이들에게 총 1억1,000만 원을 수수한 것으로 보고있다.
김씨의 수법은 지난달 21일 합동수사팀이 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긴 자칭 ‘병역의 신’ 구씨의 행태와 동일하다. 자기공명영상(MRI) 등을 통한 객관적 진단에 한계가 있어 평소 병력이 중요한 뇌전증의 특성을 십분 활용했다. 김씨는 구씨처럼 군 전문 행정사로 행세하고, 구씨가 차린 관련 사무소의 부대표 직함을 달고 일해 두 사람이 공모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씨는 의뢰인이 중도에 포기 의사를 내비치면 수수료 명목으로 거액을 요구하기도 했다. 그는 의뢰인에게 ‘뇌전증 판정 시 2,000만 원을 지급한다’는 내용의 계약서에 서명하게 했다. 이후 의뢰인이 계약을 파기하려 하면 법원에 상담료 지급명령을 신청하는 형태로 압박한 것으로 나타났다.
합동수사팀은 이들 브로커를 통해 병역을 면제받거나 병역 등급을 조정 받은 의뢰인이 적어도 70명은 넘을 것으로 보고 스포츠계(축구 배구 승마 볼링)와 연예계(래퍼)를 상대로 폭 넓게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불똥은 의료계로도 튀었다. 뇌전증이 의사의 임상적 판단이 적지 않게 작용하는 만큼, 브로커와 의료인이 공모한 정황도 일부 드러난 것이다. 계약 분쟁과 관련한 김씨의 법원 판결문에는 2021년 군 입대를 앞두고 상담을 신청한 A씨가 뇌전증 진단을 통한 면제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지 않고 머뭇거리자, 김씨가 다른 계약서를 보여주며 “현역 의사와 1억 원에 맺은 계약”이라고 말한 대목이 나온다.
구씨 역시 의뢰인에게 의사 등과의 인맥을 여러 차례 과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물론 두 사람이 의뢰인을 안심시키기 위해 의료인과의 친분을 부풀리거나 거짓말로 회유했을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