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전산(알아크사 사원의 이스라엘 명칭)'은 매우 중요하다. 공식 방문하겠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극우적이라는 새 정부의 국가안보 장관 '이타마르 벤-그비르'가 자신이 밝힌 대로 3일(현지시간) 동예루살렘의 성지 '성전산'을 찾았다. 이곳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 공통의 성지지만, 협정을 통해 현재는 이슬람 국가인 요르단이 관리하고 있다.
아랍권은 이스라엘 극우 정치인의 도발적인 성지 방문이, 성전산의 현재 지위를 바꾸기 위한 시도로 보고 있다. 다음 주로 예정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의 정상회담이 취소되는 등 중동 정세도 즉각 얼어붙었다.
이날 미국 뉴욕타임스(NYT), 알자지라 등에 따르면 벤-그비르 장관의 성지 방문은 인적이 드문 오전 7시 기습적으로 진행됐다. 성지에 머무른 시간도 고작 13분에 그쳤지만, 아랍권 국가들이 강하게 반발하는 등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슬람교와 기독교, 유대교 공통의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은 1994년 평화협정으로 사원 내부에서 기도할 권리는 무슬림만이 가진다. 극우 유사 파시스트 단체의 일원이기도 했던 벤-그비르 장관은 유대교도도 사원 출입을 가능케 하자고 주장해 왔다.
전날까지만 해도 이스라엘 현지 언론은 벤-그비르 장관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만나 성전산 방문 일정을 연기했다고 보도했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절대 방관하지 않겠다"며 무력 저지 가능성을 시사하자 벤-그비르 장관이 한발 물러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언론 보도로 분위기가 누그러진 틈을 타 성지 방문을 강행했다. 알자지라는 "직접적인 충돌을 피하려 계산된 행동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이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었다고 반발했다. 알아크사 사원은 앞서 두 차례나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의 직·간접적인 발단이 됐다. 2000년 이스라엘 정치인 아리엘 샤론의 알아크사 사원 방문에 팔레스타인은 2차 인티파타(봉기)를 일으켰다. 2021년의 대규모 유혈 충돌도 알아크사 사원 내 반(反)이스라엘 팔레스타인 시위대와 이를 진압하려는 이스라엘 경찰 간 마찰이 원인이었다.
모하메드 쉬타예 팔레스타인 총리는 "성지를 '유대인 사원'으로 만들려는 시도"라면서 "사원에 대한 습격에 맞서자"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했다. 장관의 사원행 이후 이스라엘 보안 당국은 경계 수준을 높였다고 아랍뉴스는 전했다.
이스라엘과 평화조약을 맺은 요르단과 이집트, 아랍에미리트(UAE)도 규탄에 나섰다. 이번 사건의 영향으로 다음 주로 예정됐던 네타냐후 총리의 UAE 방문과 양국 정상회담도 취소됐다. UAE는 이날 벤-그비르 장관의 방문을 '침범'으로 규정 "도발을 중단하라"는 비판 성명을 냈다.
네타냐후 총리는 장관의 성지 방문 후 성명을 통해 "성전산의 현 상태를 유지하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라는 입장을 밝혔지만,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인과 성지에 대한 '침범'이 계속되리라 본다.
극우 세력을 업고 출범한 이스라엘 새 정부가 유대인 정착지를 확대하겠단 목표를 세운 이상 팔레스타인과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이스라엘은 연정 출범 나흘 만인 2일 팔레스타인 북부 도시 제닌 인근 마을을 공격, 주민 2명을 사살했다. 이날도 이스라엘 점령지인 서안지구 베들레헴 공습으로 15세의 팔레스타인 청소년이 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