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내 가혹행위에 극단 선택… 대법 "자유 의사 아냐, 보험금 지급해야"

입력
2023.01.04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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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심 "자유로운 의사결정 어려웠다 볼 수 없어" 
대법 "사망 과정 종합적으로 살펴야" 파기환송

군내 가혹행위로 극단적 선택을 한 군인에게 사망 보험금을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4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3부(주심 안철상 대법관)는 숨진 군인 A씨의 모친이 보험사 두 곳을 상대로 제기한 보험금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

A씨는 2017년 3월 자대배치 후 선임병들에게 지속적으로 모욕과 폭행 등을 당했다. 가혹행위로 우울증 진단을 받게 된 A씨는 상부에 피해 사실을 보고했지만 오히려 따돌림을 당했고, 같은 해 8월 영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A씨 어머니는 이에 아들이 생전 가입했던 보험사 두 곳에 사망보험금을 신청했다. 보험사들은 그러나 ‘피보험자가 심신상실 등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자신을 해친 게 아니라, 고의로 해친 경우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는 약관에 근거해 보험금 지급을 거부했다. A씨 어머니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제기했다.

1·2심은 모두 보험사 손을 들어줬다. 쟁점은 A씨가 극단적 선택 당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있었는지 여부였다. 재판부는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거나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것만으로는 의사결정 능력 상실 근거로 삼기 부족하다"며 A씨가 환청, 환시, 망상 등의 증상을 보인 적이 없다는 점을 들어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극단적 선택의 방법이 우발적이고 충동적이지 않았다는 사정만을 근거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할 수 없는 상태를 부정해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A씨가 극단 선택에 이르게 된 과정을 더욱 세심히 살펴야 한다는 취지였다.

A씨의 우울증 진료기록 감정 결과 자료에는 "망인의 우울, 불안상태 등이 극단 선택 실행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이고, 초진 당시부터 지속된 증상이 극단 선택 직전에는 더욱 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적혔다. 원심은 이를 두고 극단적 선택을 한 이들에게 흔히 나타나는 심리적 우울상태라고 판단했으나, 대법원은 “감정인의 감정 결과는 현저한 잘못이 없는 한 이를 존중해야 하고 쉽게 부정해선 안 된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A씨가 우울증의 원인을 회피할 수 없는 상태에서 지속적 우울증을 겪었고 이에 따른 극심한 고통으로 자유로운 의사결정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인정할 여지가 있다”며 파기환송 이유를 밝혔다.

이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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