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023년은 육십 간지 중 마흔 번째 해인 ‘계묘년(癸卯年)으로 토끼 해다. 10간(干)의 마지막인 계(癸)와 12지(支) 중 네 번째 동물 토끼인 묘(卯)가 만난 해. 계가 색깔로는 검은색을 뜻해 ‘검은 토끼의 해’로도 불린다.
토끼는 사람과 친숙한 대표적 동물 중 하나로, 동양의 설화, 민담 등에서도 다양한 의미를 띠고 각별하게 다뤄졌다. 전통적으로 토끼는 강한 번식력 때문에 다산과 풍요를 상징하는 동물로 여겨졌다. 십이지신 중 묘신(卯神)은 방향으로는 정동(正東), 시간은 오전 5~7시, 달로는 음력 2월을 지키는 수호신이다.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에 해가 뜨는 동쪽을 지키는 토끼는 계절적으로는 농사가 시작되는 음력 2월의 봄에 해당한다. 한자 ‘묘(卯)’도 새싹이 흙을 밀치고 나오는 모습, 또는 대문을 좌우로 여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으로 해석돼 왔다. 농경사회에서 토끼를 통해 풍년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은 셈이다.
자연에서 힘센 호랑이를 피해 다니는 초식 동물이란 측면에서 보면 토끼는 약한 존재지만 영특한 지혜와 임기응변의 꾀로 위기 상황을 극복하는 동물로도 사랑받았다. 토끼가 자라에게 속아 용궁에 갔다가 기지를 발휘해 탈출하는 내용의 삼국사기 속 ‘구토지설(龜兎之說)’은 조선 후기 판소리 ‘수궁가’로 이어졌다. 호랑이를 속이는 토끼의 지혜를 보여주는 ‘토끼의 재판’ ‘꼬리 잘린 호랑이’ 설화도 같은 맥락이다. 이는 힘없는 서민들이 권력자를 재치로 골탕 먹이는 의미로도 해석돼 토끼에 대한 민중적 애착을 볼 수 있다. 영특한 토끼 관련 설화가 민간에서 오랫동안 전승되어 온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토끼는 아울러 달(月)과도 밀접한 관련을 맺어 왔다. 달의 계수나무 아래에서 불로장생의 약을 만들기 위해 방아를 찧고 있다는 ‘옥토끼’(달에 산다는 전설의 토끼) 설화가 대표적이다. 이 설화는 고대 인도 설화가 불교에 흡수된 뒤 중국을 거쳐 전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의 동요 ‘반달’도 이 설화가 배경이다. 토끼가 달과 관련을 맺은 것은 귀엽고 연약한 토끼가 여성을 닮은 것과 무관치 않다. 토끼-달-여성이 비유적으로 통한 셈이다.
토끼가 여성성을 상징한 터에 조선시대 가부장적 사회에선 방정맞고 경망한 짐승으로도 여겨졌다. ‘동국세시기’에 따르면 정월 첫 묘일(토끼날)에는 외부인과 나무로 만든 물건을 집에 들이지 않으며, 여자가 먼저 들어오는 것을 꺼렸다고 한다. 이날 여자가 남의 집을 방문하면 우환이 생긴다고 해서 여성의 활동을 제약한 것이다.
민화에서는 한 쌍으로 된 두 마리의 토끼가 자주 등장하는데, 금실 좋은 부부처럼 다정하고 화목한 관계를 상징한다. 실제 토끼는 무리를 이루어 생활하는 동물로, 귀여운 외모와 달리 혼자 있으면 불안감을 느껴 수명이 단축된다. 사주명리학에선 계와 묘가 만나는 검은 토끼의 해는 식신(食神)의 기운이 강하다고 한다.
이처럼 다양한 상징성을 가진 토끼의 의미를 살펴보는 전시회도 열리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특별전 ‘새해, 토끼 왔네!’를 3월 6일까지 개최한다. 옛사람들이 토끼를 어떤 방식으로 이해하고 형상화했는지, 현대인에겐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지 등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토끼의 상징과 의미가 담긴 민속품, 그림, 조각과 현대 캐릭터 상품 등 70여 점을 선보인다.
국립중앙박물관도 토끼해를 맞아 상설전시실 곳곳에 토끼 관련 전시품 10점을 소개하고 있다. 귀여운 토끼 세 마리가 향로를 받치고 있는 형상의 고려청자 ‘청자 투각칠보무늬 향로’, 통일신라시대의 ‘십이지 토끼상’, 19세기 조선백자 ‘백자 청화 토끼 모양 연적’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