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민간단체 보조금' 조사 선언에, 시민사회 "정치적 줄세우기" 반발

입력
2022.12.28 1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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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실 "부정 수급 적발" 전수조사 예고
시민단체 "비영리 영역 지원 세계적 흐름"
"文 정부 겨냥은 정치적 악용 의도 뚜렷"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의 과도한 국고보조금 지급을 이유로 사실상 민간단체 옥죄기를 선언하자, 시민단체들이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일부 사례를 ‘침소봉대’해 정부가 줄서기를 강요할 것이란 비판을 쏟아냈다.

이관섭 대통령실 국정기획수석은 28일 ‘비영리 민간단체 보조금 현황과 향후 계획’ 브리핑을 통해 “일부 민간단체에서 부정 수급 등 의심 사례가 적발돼 전면 감사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지난 7년(2016~2022년)간 각종 시민단체, 협회, 재단 등에 총 31조4,000억 원의 보조금이 지급됐는데, 문제가 적발된 사례 153건에서 환수된 금액은 34억 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른바 ‘눈먼 돈’으로 변질된 보조금을 재정비하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민간단체들의 활동을 위축시키는 정치적 악용 수단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승훈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사무처장은 “비영리 영역에 지원금이나 예산을 편성하는 건 세계적 흐름”이라며 “명확한 근거 없이 시민단체를 부도덕한 집단으로 몰아갈 위험이 크다”고 꼬집었다. 부정한 수급 운용 실태는 밝혀내야 하지만, 일부 사례로 시민단체 전부를 매도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어느 단체가 어떤 목적으로 얼마를 사용했는지조차 관리되지 않았다”는 이 수석의 발언도 적극 반박했다. 각 단체는 보조금 지급 기관에 활동 내역 및 관련 자료를 매번 제출한다고 항변했다. 한 환경단체 사무처장은 “사단법인은 모금 내역 등 이중 감사를 받기도 해 감시망이 철저한 편”이라고 강조했다. 정부 조사에서 예산을 건강보조식품 구입에 전용하는 등 부적절 사례 10건이 적발된 4ㆍ16재단은 “세부 지적사항을 확인해 봐야겠지만, 그간 외부 회계감사를 통해 보조금 사용 내역을 상세하게 공시했다”고 해명했다.

윤 대통령 퇴진 집회를 주최해 등록 말소 및 보조금 환수 조치를 받은 촛불중고생시민연대(촛불연대)는 강도 높게 정부를 비판했다. 촛불연대는 ‘2022년 서울시 비영리민간단체 공익활동지원 공모사업’에 응모해 보조금 1,600만 원을 받았다. 최준호 촛불연대 대표는 “중고생들이 모여 촛불집회를 열었다고 정치적 탄압을 하고 있다”면서 “친북 성향 강연 등 목적에서 벗어나 보조금을 쓰지 않았다는 점을 소명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시민단체들은 대통령실이 전임 정부를 겨냥해 “5년간 보조금 지급 규모가 매년 3,555억 원씩 증가했다”고 공개한 점도 문제 삼았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정책국 관계자는 “정치적 의도를 의심할 수밖에 없는 조사”라며 “조사 과정에서 소명 기회 등 적법한 절차가 반드시 제공돼야 한다”고 말했다. ‘종북 세미나’ 등 대통령실이 표현 사용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김소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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