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과 스코틀랜드에서 국가 신분증의 성별 변경 절차를 간소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통과됐다. 성별을 바꾸기 위해 필요했던 의료진 소견서 등 여러 조건을 없애는 게 골자다. 젠더에 있어서 개인의 자기 결정권을 충분히 보장한다는 취지로 마련된 법이지만, 검증 절차 없이 성별을 바꾸는 데 대한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스페인 하원은 22일(현지시간) 서류상 성별을 쉽게 바꿀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22일(현지시간) 통과시켰다. △찬성 188표 △반대 150표 △기권 7표가 나왔다.
지금까지는 신분증의 성별을 고치기 위해 ①자신의 생물학적 정체성이 성정체성과 일치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하는 의료진 소견서 ②호르몬 복용 기록 등 생물학적 성별과 다른 성별로 2년 이상 살았음을 증명하는 서류 등을 제출해야 했는데, 이러한 조건을 없애는 게 골자다.
다만 14~16세는 부모 및 법적 보호자의 동의가, 12~13세는 판사의 승인이 필요하다. 해당 법안은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속한 사회당과 연립정부를 꾸린 급진좌파 정당 포데모스가 주도했다.
같은 날 스코틀랜드 의회에서도 비슷한 법안이 찬성 86표, 반대 39표로 가결됐다. 스페인과 마찬가지로 의료진 소견서가 의무 조항에서 빠지고, 성별을 바꿀 수 있는 최소 연령이 18세에서 16세로 낮아진다. 다만 성별 변경을 신청한 후 3개월의 숙고 기간을 가져야 한다.
법안 도입 취지는 성별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데 있다. 특히 성전환자들은 수술을 한 뒤에도 신분증에는 여전히 기존 성별이 남아 있어 자신을 증명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레네 몬테로 스페인 평등부 장관은 "마침내 성전환을 병으로 여기지 않고, 성전환자의 권리를 보장할 수 있게 됐다"고 환영했다. 이미 유럽에서는 9개국이 성별 정정 절차를 간소화했다.
그러나 반대 목소리도 상당하다. 운동 신경이 좋은 남성이 여성으로 성별을 변경하고 출전하거나, 성별을 위장한 범죄가 더 많아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해리포터 작가 JK 롤링은 "가정폭력 가해자가 성별을 바꾸고 피해자에게 접근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두 나라에서는 상당한 논쟁이 있었다. 스페인은 연립정부 내에서도 의견 일치가 되지 않아 18개월간 다퉜다. 스코틀랜드에선 지역사회안전부 장관이 개정안에 반대하며 사퇴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