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간 '공짜노동'의 주범으로 지적받아온 포괄임금제에 대해 정부가 처음으로 기획감독에 돌입한다. 기업들이 포괄임금제를 악용해 장시간 노동을 조장한다는 판단에 따라 법적 한도를 넘는 연장근로와 임금체불 등을 잡아내기 위해서다. 다만 포괄임금제 폐지를 요구해온 노동계는 "겨우 20여 곳 기획감독에 그치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이라며 비판했다.
고용노동부는 내년 1월부터 3개월간 포괄임금 및 고정OT(Overtime·초과근무) 오남용 사업장 기획감독을 실시한다고 19일 밝혔다. 이정식 고용부 장관이 취임 초부터 포괄임금제 문제점에 대해 언급해온 데다, 최근 미래노동시장연구회가 노동시장 개혁 권고안에서 포괄임금제 오남용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라고 지적한 데 따른 조치다. 대상은 10~20개 사업장이며, 정보기술(IT) 업계가 주요 대상이다.
포괄임금제는 ①근로시간 산정이 어려울 때 ②당사자 간 협의가 있고 ③근로자에게 불이익이 없을 경우 각각 산정해야 할 여러 임금 항목을 한 데 합쳐 일정액으로 지급하는 계약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기본 임금 월 70만 원에 연장·야간·휴일 수당을 포함한 법정수당 30만 원을 합쳐 100만 원을 주는 식이다. 고정OT 계약은 근로시간 산정이 가능하더라도 기본임금 외 법정수당을 정액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본임금 70만 원에 연장·야간·휴일 근로수당을 각각 10만 원씩 더해 총 100만 원을 받는 방식이다.
사실 포괄임금제와 고정OT는 법에 근거한 제도는 아니다. 근로시간을 명확하게 계산하기 어려울 때 편의상 정한 임금 지급 방식으로, 법원 판례에 의해 형성된 제도다. 즉 근로기준법의 '예외 사항'이란 뜻이다. 그러나 2020년 정부가 실시한 10인 이상 사업체 포괄임금제 실태조사에 따르면 37.7%가 '법정수당을 실제 일한 시간으로 계산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지급한다'고 답했다. 2019년 한국경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기업의 57.9%가 포괄임금제를 도입했다. 근로시간을 명확하게 계산하기 어려운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더라도 임금 계산의 편의 등을 위해 포괄임금제 또는 '고정OT 계약'을 택하는 사업장이 많다는 뜻이다.
그런데 노동계는 포괄임금제하에서 '공짜 노동착취'가 빈번하게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한 달 40시간 이상 야근을 하고도 초과 수당을 받지 못하거나, 주 52시간을 넘기는 노동을 시키는 사례 등이 많다는 것이다. 고용부 관계자는 "원칙적으로 포괄임금제도 근로기준법을 따라야 하고, 실제 근로시간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임금체불'이 된다"며 "이번 기획감독 이후 내년 1분기 안에 관련 대책을 내놓겠다"고 밝혔다.
노동계는 아예 '포괄임금제 폐지'를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 연간 평균 노동시간(1,915시간)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최고 수준인 것은 포괄임금제 역할이 크다고 보고 있다. 시민단체 직장갑질119는 이날 "포괄임금제는 법정수당을 도둑질하고, 휴식의 권리를 빼앗아가며, 근로기준법을 무너뜨리는 범죄행위"라고 비판했다. 포괄임금제 폐지를 주장하는 이 단체는 다음 달 31일까지 '포괄임금 신고센터'를 운영해 접수된 제보를 근거로 고용부에 근로감독을 요구할 예정이다.
고용부는 포괄임금제 제도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고 있다. 이 장관은 "포괄임금제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이를 오남용해 일한 만큼 보상하지 않는 '공짜 야근'이 문제"라며 "특히 사회초년생인 청년 등 노동 약자에게 더욱 가혹한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