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불호는 기본? OTT는 왜 이단아 콘텐츠를 사랑할까 [HI★초점①]

입력
2022.12.18 10:16
'카터'·'글리치'…호불호 갈린 OTT 작품들
"OTT가 바라보는 건 글로벌 시장"

그간 '대중적'이라 여겨졌던 드라마, 영화의 문법들이 사라지고 있다. 그 중심에는 OTT가 있다. 누가 봐도 호불호가 깊게 갈릴 법한 작품들이 넷플릭스 왓챠 티빙 등을 통해 시청자들을 찾아가는 중이다.

지난 8월 공개된 넷플릭스 영화 '카터'는 액션으로 꽉 채워져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주어진 시간 안에 자신을 되찾고 미션을 성공시켜야만 하는 카터의 이야기를 담았다. 극을 이끈 주원은 제작보고회를 찾았을 당시 "우리 영화가 2시간 조금 넘는데 2시간 내내 액션이라고 봐도 된다"고 말했다. 그의 이야기를 증명하듯 '카터'는 '액션의, 액션에 의한, 액션을 위한' 작품이라는 평을 얻었다.

넷플릭스는 독특한 내용의 드라마들로도 주목받았다. 지난 10월 공개된 '글리치'가 대표적인 예다. '글리치'는 외계인이 보이는 지효와 외계인을 추적해온 보라가 흔적 없이 사라진 지효 남자친구의 행방을 쫓으며 미확인 미스터리의 실체에 다가서게 되는 과정을 그렸다. 다만 사이버 종교, 믿음 등에 대한 이야기까지 담아내다 보니 산만하다거나 난해하다는 평도 있었다.

지난달 공개된 김영광 강해림 주연의 '썸바디'도 마찬가지다. 이 드라마는 소셜 커넥팅 앱 썸바디를 매개로 살인사건이 벌어지면서 개발자 섬과 그 주변의 친구들이 의문의 인물 윤오와 얽히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여자 주인공 섬은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하는 인물이고 남자 주인공 윤오는 연쇄살인마다. 예사롭지 않은 인물들인 만큼 시청자들이 이들의 감정선을 따라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그런가 하면 BL(보이즈 러브) 콘텐츠들을 선보인 OTT도 많았다. 지난 2월 왓챠가 선보인 '시맨틱 에러'는 컴퓨터공학과 추상우와 디자인과 장재영의 이야기를 담은 캠퍼스 로맨스물이다. 이를 극장판으로 확장한 영화 '시맨틱 에러: 더 무비'가 관객들을 만나기도 했다. 지난 6월 공개된 '나의 별에게 시즌2' 또한 BL 작품이다. 이 드라마는 정상의 궤도를 이탈해버린 톱스타 강서준과 궤도를 벗어나고 싶지 않은 셰프 한지우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호불호가 깊게 갈린 건 사실이지만 이러한 작품들의 성적이 매번 나쁘진 않았다. 일부는 뜨거운 인기를 누려 시선을 모으기도 했다. '카터'는 독특한 포맷 탓에 시청자들 사이에서 평이 크게 갈렸으나 넷플릭스 글로벌 톱10 영화(비영어)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하는 등 세계인들에게 큰 관심을 받았다. '썸바디'는 한국 넷플릭스 오늘의 톱10 2위로 올라섰고 '시맨틱 에러'는 8주 연속 왓챠 톱10 1위, OTT 콘텐츠 트렌드 1위, 왓챠피디아 평점 4.5점 등의 기록으로 눈길을 끌었다.

많은 창작자들이 마니아틱한 장르의 작품들이 세상 빛을 보는데 OTT가 큰 기여를 해왔다고 말한다. 노덕 감독은 '글리치'와 관련해 진행된 인터뷰에서 OTT가 연출자들에게 새로운 무대를 열어주고 있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OTT에서 가장 편하게 구현할 수 있는 게 존재한다. '글리치'는 OTT라는 환경의 혜택을 많이 본 작품이다"라고 전했다.

사라지는 '대중적' 콘텐츠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콘텐츠와 관련해 '대중적'이라는 표현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대중적인 콘텐츠라는 말은 과거 보편적으로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걸 의미했다. 그런데 지금은 사람들이 취향별로 콘텐츠를 선택해 소비하는 시대다. 특정 취향에 어울리는 사람들을 타겟팅한 콘텐츠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했다. 정 대중문화평론가의 설명에 따르면 호불호가 갈린다는 건 콘텐츠의 지향점이 명확하다는 사실을 의미하기도 한다. 즉 어떤 면에서 일종의 '경쟁력'을 갖춘 셈이다.

OTT는 이러한 경쟁력을 콘텐츠를 선보이는데 특히 앞장서는 중이다. 많은 OTT 콘텐츠가 전 세계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는 게 그 배경 중 하나다. 정 대중문화 평론가는 "OTT는 글로벌 시장을 바라본다. 취향 공동체를 로컬 시장 안에서 생각한다면 작은 규모지만 글로벌 관점에서는 폭이 넓다. 우리한테는 인기를 못 끈 작품이더라도 그 작품이 남미나 미국 어딘가에서는 큰 관심을 받을 수 있다. OTT의 전략 자체가 다를 수밖에 없다"고 했다. OTT가 호불호가 갈릴 만한 콘텐츠를 내놓는데 조금 더 과감해질 수 있는 이유다.

정 대중문화평론가는 '카터'의 경우에도 국내에서는 서사가 약해 아쉬움 섞인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지만 맨몸 전투, 실감 나는 싸움, 빠른 전개 등 한국적 액션을 통해 세계인의 선택을 받을 수 있었다고 분석했다. "한국 관객들은 서사, 액션물이 가진 재미 등을 골고루 원하지만 글로벌 관점에서는 액션물로 소비할 수 있는 콘텐츠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대중적'이지 않은 콘텐츠는 드라마, 영화의 다양성을 확대한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다만 기존의 관념을 깨부수는 콘텐츠는 누군가에겐 '받아들이기 힘든 것'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혁신적인 작품을 선보이는데 앞장서고 있는 OTT 관계자들 사이에서조차 호불호가 깊게 갈리는 중이다. 한 OTT 관계자는 본지에 "회사 사람들 사이에서도 BL에 대한 시선이 갈린다. 좋아하는 직원이 있는 반면 거부감을 드러내는 이들도 있다"고 귀띔했다. 콘텐츠에 대한 취향이 모두에게 존중받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해 보인다.

정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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