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분에 행복했습니다!”
영하의 추위도, 갑작스러운 눈발도 서울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운 12번째 태극전사들의 열기를 막지 못했다. 한국 축구국가대표팀이 6일 새벽 카타르 월드컵 16강전에서 브라질에 1-4로 패하며 보름간의 여정이 마무리됐다.
2022 월드컵은 우리에게 충분히 기억할 만한 스포츠 이벤트로 기록될 것 같다. 16강 성과를 일군 선수들의 경기력만이 아니다. 성숙한 응원문화도 반짝반짝 빛났다. 붉은악마들은 4차례 거리응원을 통해 승패에 연연하지 않고, 경기 자체를 즐기는 수준 높은 시민의식을 보여줬다. 안전사고도, 쓰레기 대란도, 얄팍한 상혼도 끼어들 틈을 주지 않았다.
올해 거리응원은 시작 전부터 험로투성이였다. 월드컵 개막 20일 전 서울 한복판에서 158명이 목숨을 잃는 대형 참사가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응원은 성사됐지만, 사실 걱정이 많았다. 거리응원 역시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군중밀집 행사인 탓이다.
우려는 기우였다. 11월 24일 우루과이전, 11월 28일 가나전, 이달 3일 포르투갈전, 이날 브라질전까지, 네 차례 경기에 총 7만1,000여 명이 거리로 나와 목청껏 “대~한민국”을 외쳤다. 예상을 훨씬 웃돈 수치였다. 평일 오전 4시 열린 브라질전에도 영하의 기온과 궂은 날씨를 뚫고 3만 명 가까이 운집했다.
인파 사고는 단 한 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붉은악마와 경찰, 서울시의 철저한 통제에 잘 따른 시민들의 힘이었다. 우루과이와의 첫 경기 때 광장을 찾은 서원형(26)씨는 “응원 공간도 넉넉했고, 집에 갈 때도 시민들이 질서를 잘 지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했다.
시민의식은 경기 종료 후 더 빛을 발했다. 거리응원의 부산물처럼 치부되던 쓰레기 산은 이제 과거의 유물이 됐다. 불과 8년 전 브라질 월드컵 당시 대표팀이 알제리에 2-4로 대패하자, 전국 거리응원장마다 쓰레기로 뒤덮인 무질서는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다. 광장 곳곳에 파란색 종량제봉투가 배치돼 쓰고 버린 응원도구 등이 차곡차곡 모였다. 일부 시민들은 봉투를 들고 다니며 자발적으로 광장에 남은 쓰레기를 줍기도 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
태극전사들이 기적의 16강 진출을 완성한 뒤 펼친 태극기에 적힌 글귀다. 시민들의 마음도 매한가지였다. 이번 월드컵에서는 승패를 떠나 최선을 다한 선수들에게 박수를 보내는 응원문화가 자리 잡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브라질전에서 전반에만 4골을 허용하는 등 초반부터 패색이 짙었지만 대다수 시민들은 끝까지 광장을 지켰다. 후반 백승호의 만회골이 터지자 열기가 되살아나기도 했다. 한국의 탈락이 확정된 후에도 아쉬움보다 뿌듯하다는 반응이 더 많았다. 전재우(25)씨는 “선수들이 자랑스럽다”고 엄지를 들어 보였다.
선수들의 투혼과 시민들의 준법정신에 감동받아 광장을 찾은 이도 있었다. 브라질전 거리응원에 참여한 항해사 차원석(33)씨는 “6개월간 바다에서 지내 우울했는데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고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