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이후 처방약 품귀 현상이 발생하면서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약국에서 같은 성분의 더 저렴한 약으로 대체조제하는 사례가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조제는 의사가 특정 상품명으로 처방했을 때 동일 성분·함량·제형을 가진 다른 회사 제품으로 대체해 조제하는 것을 말한다.
의약계는 성분명 처방을 두고 갈등을 벌이고 있다.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약을 처방할 때 특정 상품명이 아니라 성분 이름으로 처방하고 약사는 해당 성분·함량을 가진 제품 중에서 하나를 골라 환자에게 조제해주는 것이다. 이럴 경우 건강보험 재정과 환자 부담금이 대폭 절감될 것으로 추산되지만, 공론화될 때마다 의사단체가 반발하면서 성분명 처방은 시행되지 않고 있다.
12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에 따르면 의사가 처방한 의약품보다 저렴한 제네릭 의약품(동일성분 의약품)으로 대체조제한 건수는 지난해 192만 건이었다. 2017년 100만 건에서 크게 증가한 수치로, 오미크론 확산으로 감기약 등 각종 처방약이 품귀 현상을 빚은 올해는 상반기에만 190만 건을 기록했다.
약국에서 처방약을 조제한 건수는 2017년 5억 건에서 2021년 4억2,000만 건으로 줄었으나 저가약으로 대체조제한 건수는 오히려 같은 기간 2배 가까이 늘어났다. 저가약 대체조제가 늘면서 올해 상반기 건보 재정과 환자 본인부담금이 17억 원가량 절감된 것으로 추정된다.
보건당국은 저가약으로 대체조제할 때 건보재정과 환자 부담금 등이 절감되기 때문에 이를 장려하기 위해 약국에 가산금까지 지급하고 있다. 그러나 대체조제의 번거로움과 환자의 거부감 때문에 대체조제 비율은 1% 미만에 불과하다. 대체조제를 하려면 환자의 동의가 필요하고, 병원에 내역을 알려야 하기 때문이다.
현행 의료법에 따르면 상품명 처방과 성분명 처방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약업계에서 성분명 처방을 공론화할 때마다 의사들이 상품명 처방을 고수하면서 오랜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지난 10월 20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중 성분명 처방 도입의 필요성이 언급된 후 의료계와 약업계의 갈등이 재점화됐다. 성분명 처방에 대해 의사단체가 반대하자 서울시약사회는 '의사들이 리베이트로 이익을 취한다는 걸 실토한 것'이라고 비판했고, 이에 지난달 소아청소년과의사회가 권영희 서울시약사회장을 모욕죄로 고소하는 등 고소·고발전이 벌어지고 있다. 식약처는 양측의 갈등에 대해 "의약정 등 사회적 합의를 거쳐야 하는 사안"이라고 밝혔다.
의사단체들은 성분명이 같다고 해서 같은 약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제네릭 의약품은 최초 개발 의약품과 체내에 흡수되는 속도와 흡수량이 동등하다는 것을 증명하는 생물학적 동등성시험(생동성시험)을 거치는데, 80~125% 범위에 들면 시험을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의협 관계자는 "대체조제를 하면 환자의 질병이 제대로 치료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며 "같은 성분이라도 사람마다 효능이 다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반면 약업계는 제네릭 의약품이 최초 개발된 의약품과 주성분 함량, 약효 작용 원리, 제형, 효능, 복용방법 등이 동등한 의약품이라고 강조한다. 서울시약사회 관계자는 "성분이 같은 의약품인데 제약회사가 다르다고 효과가 다르게 나타난다는 의학적 근거가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