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가 빠지고 외국투자도 급감"...'건설·금융' 비리에 흔들리는 베트남 경제

입력
2022.12.05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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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금융 유착 비리 척결 '후폭풍' 여파
주식·채권시장 불안, FDI 유입도 '적신호' 
현장 우려에도… 정부, 시장 조율 자신

베트남 부동산업계발 자금 경색 위기가 베트남 경제 전반을 흔들고 있다. 불안감을 느낀 현지 투자자들이 주식과 채권을 던지면서 베트남 금융 시장이 얼어붙었고, 이상 기류를 포착한 외국인 역시 직접투자(FDI) 규모를 줄이기 시작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베트남 정부는 부동산 업계에 시중 자금을 풀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번 위기가 건설·금융의 유착 비리로 촉발된 만큼, 문제 기업을 정리하고 가겠다는 것이다. 공산주의 국가라 언제든 금융시장에 개입해 인위적인 부양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작용했다.

외국인 투자자들도 베트남 정부의 사태 해결 의지를 눈여겨보고 있다. 이번에도 베트남 경제가 체질 개선을 못 하면, FDI 규모는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주식 31% 하락·기업채 발행 56% 감소, FDI도 '흔들'

5일 베트남 증권거래소(VNX)와 닛케이 아시아 등 외신에 따르면, 베트남 주식시장의 근간인 VN지수는 지난주 올 초 대비 31% 하락한 채 장을 마감했다.

주식시장 위기는 금융주와 함께 VN지수의 '양대산맥'으로 불리는 건설부동산주가 몰락했기 때문이다. 건설부동산주는 지난달 베트남 중앙은행이 건설-금융 유착 비리 척결을 위해 건설업계의 여신을 전면 중단한 뒤 가파르게 하향세를 그리고 있다.

건설·금융 비리 척결 여파는 일반 기업채 시장에도 대형악재로 작용했다. 투자자들이 너도나도 건설부동산기업의 채권을 조기 상환하며 현금화에 나선 것이다. 실제로 베트남 채권시장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일반 기업채 발행은 전년 동기 대비 56%나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경기침체 징후가 완연하자 베트남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FDI 유입 흐름도 줄어들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기간에도 줄곧 상승곡선을 그렸던 베트남 FDI는 지난달 처음으로 전년 대비 5%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기업들이 현지 투자의 전제조건인 금융시장의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는 이상, FDI를 무리하게 진행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는 얘기다.

현지 FDI 기업 "확실히 체질개선해야 추가 투자 진행할 것"

시장의 위기 징후에도 중앙정부는 건설업계를 향한 '여신 중단' 조치를 절회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이번에도 건설·금융 유착 비리를 끊어내지 못한다면, '포스트 차이나'를 노리는 국가 성장전략이 계속 차질을 빚을 수밖에 없다고 보는 이유에서다.

이와 관련 팜민찐 총리는 지난주 현지 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베트남은 모든 사람들이 법에 따라 평화롭게 경제를 발전시킬 수 있도록 안정과 질서를 보장할 것"이라는 말로 비리 척결 작업이 이어질 것임을 분명히 했다.

중앙정부의 밀어붙이기는 베트남 특유의 사회주의식 시장 장악 시스템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베트남은 중앙정부가 중앙은행부터 주식 및 채권 시장에 언제든 직접 개입이 가능하다. 당장 시장이 크게 흔들리더라도, 적절한 시점에 대대적인 자금 지원 및 보상책을 내놓기만 하면 시장이 정상화될 것이라 자신한다는 뜻이다.

FDI를 진행하고 있는 외국기업들은 베트남 정부의 이번 사태 해결 방식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베트남 북부에서 전자기기 부품 생산 공장을 운영 중인 A법인장은 "이번에도 겁만 주다 시장에 개입해 대충 상황을 마무리한다면 상당수 기업들이 기존 FDI 계획을 수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현지 FDI는 지난해 베트남 전체 수출량의 73.6%를 차지할 정도로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베트남 경제를 지탱하는 한 축인 외국 투자금이 크게 줄어든다면, 그 후폭풍은 적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하노이= 정재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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