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다른 국가의 미사일 기지 등을 직접 타격할 수 있는 ‘반격 능력(적 기지 공격 능력)’ 보유 방안을 처음으로 공식화했다. 일본은 2차 세계대전 패배 이후 방어를 위해서만 무력을 쓴다는 ‘전수방위’ 원칙에 따라 방어용 무기를 주로 보유했다. 앞으로는 사실상 공격을 염두에 두고 장사정 미사일을 비롯한 원거리 타격 수단을 보유하겠다는 것이다. ‘방패’뿐 아니라 ‘창’도 갖겠다는 뜻으로, 일본 언론은 이를 ‘안보 정책의 대전환’이라 부른다.
일본 정부는 지난 3일 안보 관련 3문서의 연내 개정을 위한 집권 자민당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실무 협의에서 반격 능력 보유 의사를 정식으로 밝히고 그 실행 방안을 제시했다. 기시다 후미오 총리는 “모든 선택지를 배제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검토한다”고만 말해 왔으나, 앞으로 본격적으로 공론화하겠다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구체적 내용에 대해선 함구했다. 일본 언론들은 협의 참석 의원들을 인용해 “정부는 '주변국의 미사일 능력이 향상되면 현재 체제로는 요격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을 근거로 들었다”고 전했다. 중국이 극초음속 미사일 기술 개발에서 앞서 가고 있고, 북한도 올해 초 극초음속 미사일 발사 시험을 했다고 밝히는 등 위협이 커지는 상황에서 국민 보호를 위해 손놓고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최대 명분이다.
하마치 마사카즈 공명당 안보부회장은 25일 협의 후 “여러 나라가 탄도미사일 등을 많이 보유해 방어가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해 반격 능력 보유에 공감한다는 뜻을 밝혔다. 공명당은 그간 전수방위 원칙 훼손에 부정적이었다. 여기에는 △중국 해경선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인근 해역 출몰 △탄도미사일 일본 상공 통과 등 북한의 미사일 도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인해 일본 여론이 강경해진 것이 영향을 미쳤다.
이 같은 움직임이 선제공격을 위한 군사 행동 가능성을 열어 두는 데까지 가는 것에 대해선 우려가 크다. 이에 대해 일본 정부는 “국제법을 엄수하고 선제공격은 하지 않겠다”고 일단 선을 긋고 있다. 자위대의 반격 능력 행사는 △국회의 승인을 받고 △2014년에 책정한 ‘무력 행사의 3요건’을 충족한 경우에 한해 △최소한도로 제한될 것이라고 25일 협의에서 설명했다.
무력 행사의 3요건이란 ①일본의 존립과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 등 명백한 위험이 있고 ②국민을 지키기 위해서 다른 마땅한 수단이 없을 때 ③최소한의 무력만 사용한다는 원칙이다.
여권엔 이견이 있다. 아베 내각 때인 2012년부터 집단 자위권 행사 확보를 강행한 자민당은 공격 대상을 적의 미사일 발사 지점부터 지휘통제기능까지 확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공명당은 반대한다. 다만 여당 협의가 1, 2주 안에 매듭지어질 것이라고 일본 언론은 점쳤다.
일본 방위성은 반격 능력 보유 방침을 내부적으로 사실상 확정하고 원거리 타격 무기의 도입과 개발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방위력의 근본적 강화 달성을 위해 정부의 방위 예산을 국내총생산(GDP)의 약 2%(약 10조 엔·약 90조6,000억 원)까지 늘릴 방침이다. 현재는 약 1% 수준이다.
방위력 강화의 핵심은 전투 능력의 증강이다. 특히 반격 능력 수단인 ‘장사정 스탠드오프 미사일’(적의 위협 범위를 벗어난 지역까지 원거리 타격)을 5년 내 1,000발 이상 배치하는 방안 등이 추진되고 있다.
시나리오도 마련돼 있다. 마이니치신문에 따르면, 1단계로 사정거리 1,250㎞ 이상인 미국산 순항미사일 토마호크를 구입해 이지스함 등에 배치하고, 사거리 1,000㎞ 정도의 미사일을 서남부 난세이 제도에 배치한다. 2단계는 일본제 ‘12식지대함미사일’의 사거리를 1,000㎞ 이상으로 늘리는 식으로 개량해 2026년도에 지상발사형의 운용을 시작하고, 사거리 2,000㎞인 도서방위용 고속활공탄을 본토인 혼슈에 배치하는 것이다. 3단계로 사거리 3,000㎞에 이르는 극초음속 유도탄을 개발해 2030년쯤 홋카이도에 배치하는 것이 목표이다.
이 같은 구상이 현실화하면 일본은 방어만 전담하고 미국이 공격을 맡는 전통적인 미일동맹의 역할 분담에 큰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이는 동북아시아 안보에서 미국의 부담을 줄이고 일본이 더 많은 역할을 하길 원하는 미국의 입장에도 부합한다. 스가 요시히데 전 총리와 기시다 총리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만나 일본이 스스로 방위력을 강화하고 방위비를 대폭 증액하겠다고 여러 차례 약속한 바 있다.
그러나 일각에선 방위비를 두 배로 늘리고 방위력을 증강하면 자칫 일본의 군사대국화로 이어지며 지역에 긴장을 더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장사정 미사일을 1,000발 이상 보유한다는 것이 실질적 억지력으로 이어질지는 불분명하며, 오히려 동북아시아의 군비 확대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