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제2 수출시장으로 부상한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ㆍ아세안) 시장은 더 키우고, 자국 우선주의가 세진 미국 시장은 뚫고, 수출 성장세가 꺾인 중국 시장은 살린다.’
한국의 3대 주력 수출시장 각각에 대한 맞춤 전략이 마련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23일 서울 서초구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KOTRAㆍ코트라)에서 주재한 첫 ‘수출전략회의’에서다. 정부는 수출 침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업계까지 포함해 구성한 이 범부처 회의를 앞으로도 꾸준히 열며 재도약을 노리겠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우선 한국 수출시장을 아세안ㆍ미국ㆍ중국 등 3대 주력시장 및 중동ㆍ중남미ㆍ유럽연합(EU) 등 3대 전략시장으로 분류하고 시장별 특성에 맞춰 특화 전략을 세웠다. 한국 수출의 57%가 몰려 있는 3개 주력시장 중 가장 주목하는 시장은 아세안이다. 베트남과 중간재에 편중된 수출시장 및 품목을 다변화한다는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인도네시아ㆍ태국 등으로 공급망 투자를 분산하고 수출 품목은 소비재ㆍ서비스ㆍ기반시설(인프라) 등으로 확대해 간다는 계획이다. 인도네시아나 필리핀 등 자원 부국과는 핵심 광물 확보를 위한 협력에 공을 들이기로 했다.
조 바이든 정부 출범 이후 자국 중심의 공급망 재편을 추진하고 있는 미국 시장의 경우 반도체ㆍ배터리 등 공급망 핵심 품목에 대한 미국의 대미 투자 확대 요구를 관련 소재ㆍ부품ㆍ장비 수출 확대 계기로 만들 필요가 있다는 게 정부 판단이다. 미국의 대규모 인프라ㆍ친환경 투자 계획을 프로젝트 수주 기회로 적극 활용하도록 국내 기업을 돕는다는 구상을 정부는 갖고 있다.
중국 제조업의 고도화 등으로 성장이 정체한 대중(對中) 수출은 중국 시장 내 경쟁력 유지를 위한 신성장 동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정부가 추진 중인 것은 수출 포트폴리오 다양화다. 특히 △실버(고령화) △에인절(영유아) △싱글 같은 소비 트렌드가 반영된 의료기기ㆍ헬스케어, 영유아 교육ㆍ패션, 밀키트ㆍ소형가전 등 ‘프리미엄 소비재’가 새로운 대중 수출 품목이 될 수 있을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
전략시장으로 분류한 3개 지역과는 일단 협력을 확대하는 게 목표다. 유가 급등 덕에 ‘오일 머니’가 많아진 중동 산유국 대상으로 국내 기업의 에너지ㆍ인프라 분야 사업이나 제조업 육성과 첨단 농업 투자 수요에 편승한 미래 유망 산업 진출을 지원한다. 중남미 신(新)시장 개척을 위해 남미공동시장(MERCOSURㆍ메르코수르)과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는 한편 칠레ㆍ브라질 등과 광물 협력을 강화한다. EU에서는 폴란드 원전 협력 프로젝트를 계기로 원전시장 진출과 방위산업 수출 확대를 도모할 예정이다.
이날 회의에서 사우디아라비아 등과의 정상 경제 외교 성과 이행 방안도 논의했다.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의 최근 방한을 계기로 구체화한 계약 및 업무협약(MOU) 총 26건을 구체성 순으로 유형화해 정부가 맞춤형 금융보증ㆍ컨설팅 등을 제공하기로 했다. 더불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주관으로 ‘한-사우디 경제 협력 민관추진위원회’을 발족하고 ‘코리아 원팀’ 대응 체제를 갖춰 MOU 성과가 빨리 가시화하도록 유도한다는 방침이다.
이외에 654조 원 규모 반도체ㆍ디스플레이ㆍ자동차 등 10개 주력 업종 민간 투자 프로젝트의 신속 이행을 정부가 ‘수출투자지원반’ 등을 통해 돕는다. 매달 산업부 통상교섭본부장 주재 ‘수출지원협의회’ 개최와 부처별 수출 전담 부서 지정 등으로 범부처 수출 지원 체계를 보강한다.
당초 정부는 문재인 정부 때 폐지된 ‘무역투자진흥회의’를 부활시켜 국무총리 주재 회의를 열 계획이었지만, 늘기만 하던 수출이 두 달째 줄 가능성이 커지고 올 연간 무역적자가 400억 달러에 육박하는 등 상황이 심각해지자 윤 대통령이 회의를 주재한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