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인데 눈이 안 오네"… 알프스 관광산업 '붕괴 위기'

입력
2022.11.24 04:30
17면
개장 연기·폐업 속출… 알프스 스키관광 위기
국제스키대회 취소 사태… 스포츠산업도 붕괴
여름관광 개발도… 서늘한 알프스, 피서지로 주목

‘유럽의 지붕’ 알프스가 기후변화 직격탄을 맞았다. 겨울이 됐는데도 도통 눈을 볼 수가 없다. 전 세계 여행객을 불러 모으던 알프스 스키장들은 파리만 날리고 있다. 관광업에 의존해 온 국가경제까지 휘청거린다. 국제스키대회도 잇따라 취소되면서 겨울스포츠산업 또한 위기를 맞았다. 이젠 무심한 하늘만 쳐다보지 말고 기후변화에 맞춰 차라리 알프스를 여름 관광지로 개발하자는 제안이 나올 정도다.

눈 없어 스키장 폐업할 판


22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에 따르면 알프스 스키장들이 겨울에도 포근한 날씨 때문에 비상이 걸렸다.

상대적으로 낮은 지대에 위치한 스키장들은 폐업 위기에 처했고, 고도 3,200m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스키장인 프랑스 발토랑스마저 적설량이 적어 개장일을 오는 26일로 예년보다 일주일가량 늦춰야 했다. 알프스 지역은 평균기온이 10년간 섭씨 0.3도씩 상승하며 지구 평균보다 2배 빠르게 더워지고 있다. 이듬해 눈이 녹는 시기도 한 달가량 앞당겨졌다.

겨울철 스포츠 관광 천국으로 불리는 오스트리아는 특히 위태롭다. 최근 2년간 코로나19 팬데믹 봉쇄로 어려움을 겪다가 이제야 정상화되고 있는데 이번엔 기후가 발목을 잡았다. 오스트리아에서 관광업은 2019년 기준 국내총생산(GDP)의 7.6%를 차지한다. 그중 절반이 겨울철 수입이다.

매년 겨울마다 오스트리아 인구(894만 명)의 7배에 달하는 6,000만 명이 눈을 즐기기 위해 오스트리아를 찾아온다. 겨울이 사라지면 오스트리아 국가경제가 붕괴할 수도 있다.

더구나 올해는 눈 내릴 때까지 제설기를 가동하며 버티기도 쉽지 않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전력난이 심화하고 에너지 가격이 폭등한 탓이다. 그렇다고 인공 눈이 해결책도 아니다. 날씨가 따뜻하면 금세 녹아 버리는 건 매한가지이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에는 눈이 없어 문을 닫은 스키장도 많다. 스키장이 폐업하면 주변 호텔과 식당들도 운영이 어려워진다. 지역경제가 황폐해지는 것이다.


동계 스포츠 대회도 속속 취소

동계스포츠 분야도 타격이 만만치 않다. 지난달 22일 오스트리아 솔덴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2022-2023 국제스키연맹(FIS) 알파인 스키 월드컵' 개막전 여자 대회전 경기가 안전 문제로 취소됐다. 눈이 아닌 비가 내려서 스키장 슬로프가 위험했기 때문이다. 또 같은 달 29일에는 스위스 체르마트에서 출발해 이탈리아 체르비아로 들어오는, 세계 최초로 국경을 넘는 스키 월드컵 대회가 예정돼 있었지만 이 또한 무산됐다. 눈이 충분히 내리지 않은 데다 고도가 낮은 슬로프 하단부는 제설이 불가능할 정도로 날씨가 따뜻했다.

현재 상태로 지구온난화가 계속된다면 금세기 말에는 동계올림픽을 치른 22개 도시 가운데 단 한 곳만 대회 개최가 가능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도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는 “스키선수들에게 경기 취소는 이제 이례적인 비극이 아니라 일상”이라며 “겨울스포츠산업과 관광산업이 취약해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차라리 알프스를 여름 휴양지로...


알프스 마을들은 기후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겨울철 스키 여행객 유치를 포기하고 대체 상품을 만들자는 것이다. 일례로 오스트리아 빈에서 1시간가량 떨어진 세인트코로나 스키장은 겨울이 아닌 여름에 투자하는 ‘역발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산악자전거, 등산, 하이킹 코스를 새로 정비하고, 눈 대신 레일 위에서 타는 터보건 썰매 코스도 조성했다. 저수지에서 패들보드를 타는 상품도 마련했다. 최근 이 마을에는 겨울 스키족보다 여름 피서객이 더 많이 모여들고 있다. 마을 총수익 3분의 1을 여름철에 거둬들일 정도다.

로베르트 슈타이거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대 교수는 “알프스 전역 관광 도시들이 추진하는 사업 다각화의 핵심은 여름 여행객 유치”라며 “도시와 해변이 여름철 폭염에 시달리면서 상대적으로 시원한 알프스가 새로운 피서지로 각광받고 있다”고 말했다.

김표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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