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튀르키예(터키) 대통령이 "쿠르드 무장세력을 대대적으로 소탕하겠다"고 밝혔다. 포병뿐 아니라 탱크 등 중화기에 비행기까지 동원하겠다고 했으니 사실상 '전쟁' 수준의 군사 작전을 예고한 셈이다.
쿠르드족 공격의 명분은 '국민 안전' 보장이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최근 발생한 이스탄불 폭탄 테러 배후에 쿠르드족이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 이면엔 에르도안 대통령의 '재집권 야욕'이 짙게 깔려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내년 6월 치러지는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 일부러 외부의 적과의 싸움을 부각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통상 외부와 무력 충돌이 벌어지면, 경제 위기 등 내부 실정은 덮이고 정부에 대한 지지도가 올라가는 효과가 있다.
AFP 등에 따르면 에르도안 대통령은 22일(현지시간) "우리는 비행기, 드론(무인기), 대포 등으로 테러리스트를 쫓고 있으며, 가능한 한 빨리 탱크, 포병, 병사를 투입해 그들을 쓸어버릴 것"이라고 말했다. 쿠르드족 소탕을 위해 공중전에 이어 지상작전도 병행하겠다는, 사실상 전쟁 수준의 무력 사용을 예고한 것이다. 특히 그는 쿠르드족과의 전쟁을 "신의 뜻"이라고 선언하며 "국민 안전을 지키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튀르키예 대통령실 대변인 트위터엔 "보복의 시간"이라는 문구와 함께 국기 사진이 게시되기도 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이 '경고'를 행동에 옮길 가능성은 다분하다. 내년 6월 대선 출마를 앞두고 '대형 호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 다른 국가 또는 세력과의 전쟁은 정부에 대한 국민들의 의존도 상승으로 이어진다. 안보 불안을 자극하는 게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유리하다는 뜻이다.
이미 실속을 챙겨본 전례도 있다. 2015년 6월 총선 때 소속당인 정의개발당(AKP)이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자 그는 쿠르드노동자당(PKK) 소탕 작전을 벌여 당 지지율을 끌어올린 뒤 다시 선거를 치러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싱크탱크 카네기유럽의 마크 피에리니 선임연구원은 최근 보고서를 통해 "(에르도안 대통령에게) '쿠르드족 테러리즘'은 대선 캠페인의 핵심"이라며 "앞으로 더 많은 군사 행동을 감행할 것"이라고 했다.
경제 위기에 쏠린 시선을 분산하는 효과도 있다. 튀르키예는 높은 물가 상승으로 신음하고 있다. 튀르키예 통계청은 10월 소비자물가가 지난해 동기 대비 85.81% 치솟았다고 밝혔는데, 이는 1997년 이후 최고치다. 민간 연구소에선 실질적인 상승률이 185.35%란 결과도 나왔다. 더구나 이런 살인적인 물가 상승률은 에르도안 정부의 무리한 '저금리 기조' 고집 때문이라는 분석도 있어, 경제 실정 책임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다.
이미 에르도안 정부가 쿠르드족을 내부 정치에 적극 활용하고 있는 듯한 정황도 짙다. '이스탄불 테러 조사가 완료되기 전 튀르키예 관리들은 이미 시리아 북부에서의 새로운 군사 작전을 모색 중이었다'고 싱크탱크 국제위기그룹의 튀르키예 수석분석가 버케이 만디라치는 주장했다. 튀르키예는 언론 통제를 위해 최근 법을 개정했는데, 이로 인해 이스탄불 테러 때 현지 보도가 줄줄이 제한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