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정부 대북 구상, 목표는 담대한데 현실 가능성은 '글쎄'

입력
2022.11.21 21:00
N면
정부 대북정책 '담대한 구상' 구체안 발표 
억제· 단념·대화 3D 통해 북핵 해결 의지 
"회담장에만 돌아오면 경제협력 개시" 
전문가 "우리가 먼저 뭘 할지 안 담겨" 
"박근혜 정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비슷"


'담대한 구상'이라는 이름으로 방향과 원칙이 제시됐던 윤석열 정부 대북 정책의 구체적 로드맵이 처음 공개됐다. 북한이 진정성 있는 비핵화 의지를 가지고 회담장에 나오기만 하면 당장 자원·식량 교환 등 남북 경제협력을 시작하겠다는 구상이다. 하지만, 공허한 말잔치로 끝날 우려가 크다. 북한이 신형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화성-17형을 쏘아 올리며 도발 의지를 꺾지 않는데 이들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낼 우리의 제안은 담겨 있지 않아서다.

단계별 비핵화 조치 등 로드맵 마련 땐 '남북공동경제발전위원회' 설치

통일부는 21일 이런 내용이 담긴 '윤석열 정부 통일·대북 정책 설명자료'를 내고 공개 세미나를 열었다. 윤 대통령이 광복절 경축사 등을 통해 제시한 한반도 정책의 방향을 종합한 것이다.

정부는 대북 정책 3대 목표로 ▲담대한 구상을 통한 북핵문제 해결 ▲원칙 있고 실용적인 남북관계 추진 ▲국민과 국제사회가 함께하는 평화통일의 토대 마련 등을 꼽았다. 특히, 북핵 해법으로 '3D'를 제시했다. 강력한 한미동맹을 중심으로 북한의 핵 위협을 억제(Deterrence)하고 제재와 압박을 통해 핵개발 의지를 단념(Dissuasion)시키며 외교·대화(Diplomacy)를 통해 북한이 비핵화 협상에 복귀하도록 하겠다는 계획이다.

정부는 북측이 회담장에 돌아오면 초기 조치로 경협을 개시하기로 했다. 예컨대 제재 대상인 북한의 광물자원 수출을 일부 허용하고, 이 대금으로 식량·비료·의약품 등을 구입하는 한반도 자원·식량 교환 프로그램을 벌인다는 것이다.

남북이 회담을 통해 비핵화의 정의·목표를 도출하고, 단계별 비핵화 조치 등 로드맵을 합의하는 '실질적 비핵화' 단계가 되면 북미관계 개선이 추진된다. 또 '남북공동경제발전위원회'를 만들어 발전 송배전 인프라 지원과 항만·공항 현대화 프로젝트 등을 벌이기로 했다.

마지막인 '완전한 비핵화' 단계에서는 남북 간 군비를 통제하고, 평화협정 체결 등 실질적 평화 체제를 구축한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북이 우려하는 사안까지 테이블에 올려놓고 호혜적으로 대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여정 "바다 말려 뽕밭 만들겠다는 것만큼 실현 불가능"

하지만, 탁상공론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우리가 먼저 무엇을 할지 언급하지 않은 데다 미국의 입장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이미 북한은 '담대한 구상'을 한 차례 걷어찼다. 김여정 노동당 부부장은 윤 대통령이 8·15 경축사에서 구상을 밝히자 "담대한 구상은 바다를 말려 뽕밭을 만들겠다는 것만큼이나 실현 불가능한 어리석음의 극치"라고 비난했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북한연구센터장은 “북한은 대화의 초기 조건으로 한미연합훈련 중단을 요구한다”면서 “(담대한 구상은) 이뤄질 수 없는 목표를 두고 대국민 보여주기를 위해 내놓은 정책 같다”고 평가했다.

구상 자체가 여전히 추상적인 면도 있다. ‘(정책 추진의 대전제인) 북한의 비핵화 진정성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가’라는 취재진의 질문에 정부 당국자는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서 “북한 선수(당국자)들은 무슨 뜻인지 잘 알 것”이라고 말했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비슷하다“면서 ”당시에도 남북 간 신뢰가 쌓이면 관계가 크게 개선될 것이라고 했을 뿐 신뢰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쌓을지 내놓지 못했다"고 말했다.


유대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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