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우루과이와의 첫 경기를 앞둔 2022 카타르 월드컵. 4년 전이라면 별 고민 없이 거리로 나가 열두 번째 태극전사로 대표팀의 투혼에 힘을 보탰겠지만 이번 월드컵은 다르다. 158명의 청춘이 스러진 국가적 비극이 발생한 지 한 달도 안 됐기 때문이다. 시민들은 조용히, 각자의 방법으로 결전의 시간을 기다리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성사된 거리응원도 ‘질서’와 ‘안전’이 최우선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우루과이전이 열리는 24일 밤 서울 광화문광장(1만5,000명) 등 전국 12개소에는 약 4만여 명의 거리응원 인파가 운집한다. 서울에만 4만여 명(경찰 추산)이 모였던 2018년 러시아 대회보다 적은 수치다.
경기 이틀 전까지만 해도 거리응원 자체가 불투명했다. 이태원 참사 직후 대한축구협회는 애도 동참을 이유로 거리응원을 철회했다. 축구 국가대표팀 서포터즈 붉은악마가 다시 신청했으나 서울 종로구는 안전관리 계획이 미흡하다며 ‘재심의’ 결정을 내렸다. 붉은악마 측이 관리 인력을 340명으로 대폭 증원하겠다고 약속한 끝에 거리응원이 허락됐다.
참사 후 군중 밀집 행사의 안전성이 화두로 떠오르면서 정부도 대책 마련에 공들이고 있다. 경찰은 전국 거리응원 장소에 경찰관 187명, 9개 기동대를 투입한다. 특히 거리응원의 메카 광화문광장에는 경찰특공대(18명)까지 배치된다. 서울시도 경기 당일 현장 종합상황실을 설치하고 안전관리를 위해 자치구 및 산하기관 인력 276명을 배정했다. 대학생 윤진우(22)씨는 “희생자들을 애도하되, 질서를 잘 지켜 안전한 축제를 즐기는 것도 올바른 사회적 치유 방법이라고 생각한다”며 거리응원을 반겼다.
추모 분위기에 첫 ‘겨울월드컵’이라는 특수성까지 겹쳐 소규모 응원이 대세를 이룰 전망이다. 요즘 날씨가 따뜻하다고 해도 킥오프 시간인 밤에는 다소 쌀쌀할 것으로 보여 지인들과 삼삼오오 모여 월드컵을 즐기겠다는 시민이 많다.
서울 강서구에 사는 직장인 박동엽(30)씨는 2014년과 2018년 모두 거리응원을 했으나, 이번에는 자택 시청을 결정했다. 박씨는 “얼마 전 큰 사고가 있어 마음도 무겁고, 많은 인파가 몰리는 건 부담스럽다”면서 “거리는 아니지만 친구들과 열정적으로 대표팀을 응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은 내심 ‘치맥(치킨+맥주) 월드컵’을 기대하는 눈치다. 호프집에서 맥주 한잔하며 축구보기 딱 좋은 황금시간대에 한국 경기가 열리기 때문이다. 한국과 가나의 2차전(28일)은 1차전과 마찬가지로 오후 10시 시작한다. 포르투갈과 3차전은 ‘불금(불타는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내달 3일 0시다. 서울 중구에서 호프집을 운영하는 박기숙(68)씨는 “보통 저녁엔 직원 3명이 일하는데 한 명을 이미 증원했고, 예약 상황을 봐가며 더 늘릴 것”이라고 설명했다.
명지대, 서울대, 서울시립대, 홍익대 등 서울 4개 대학은 교내ㆍ외 공간을 마련해 재학생 단체 응원을 실시한다. 김지은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단체 응원도 인원을 제한하는 등 안전ㆍ질서 관리에 각별히 신경쓸 예정”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