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람들이 아직 휴식을 청하고 있을 법한 일요일 오전 8시 30분. 서울 서대문문화체육회관에는 활기가 돌았습니다. 서울시와 동그람이가 공동 주최한 2022 반려인능력시험(반능시) 실기시험을 준비하는 수험생들이 반려견과 함께 대기하고 있었는데요. 국내에서 처음으로 열린 반려인 실기시험을 준비하는 주최 관계자들은 시험 실시 순간까지 최종 점검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그동안 세 차례 열린 반능시는 모두 필기시험이었습니다. 그러나 과연 지식을 측정하는 필기 시험만으로 반려인이 갖춰야 할 자질을 모두 갖췄는지 확인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실제로 반려인 시험을 통해 동물 사육 자격을 평가하는 독일, 오스트리아 등에서는 실제 반려견을 대하는 모습을 평가 항목에 포함하기도 하죠.
한국에서 처음 실시된 반능시 실기시험은 1시간 간격으로 참가자 5명씩 응시하는 방식으로 치러졌습니다. 실내 체육관에 산책 상황과 유사한 코스를 조성한 뒤, 반려견과 반려인이 지나가도록 해 상황에 얼마나 잘 대처하는지를 확인하는 방식이죠. 코스는 ①마주 오는 사람 지나치기 ②줄 당기지 않고 걷기 ③카페 지나쳐 가기 ④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리기 ⑤바퀴 달린 자극(자전거) 무시하기 ⑥방향 전환하기 등 6개로 구성됐습니다. 3번 코스 ‘카페’에서는 시험을 돕기 위한 반려견들이 대기하고 있었는데, 그 외에도 자전거 등의 자극에 갈등 없이 지나가는 게 시험의 목표였죠.
이번 시험을 기획하고 현장 심사를 진행한 김민희 스파크펫 트레이너는 “반려견이 아닌 사람을 평가하는 시험”이라며 “반려견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반려견과 얼마나 잘 소통하는지를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마침내 오전 9시, 시험이 시작됐습니다. 첫 번째 응시자로 나선 반려견 ‘코기’의 보호자 박지훈 씨는 다소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이내 안전하게 모든 코스를 통과했습니다. 지훈 씨는 허리춤에 간식 주머니를 준비해올 정도로 철저한 준비성과 능숙한 자세로 반려견과 소통하는 모습이 인상적인 참가자였습니다. 그는 “코기와 같이 살며 뭔가 의미 있는 이벤트를 해보고 싶었는데, 잘 해낸 것 같아 기쁘다”라고 소감을 전했습니다. 능숙한 자세로 반려견을 대하는 그에게 “전문가 교육을 받은 적이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지훈 씨는 “방문 교육을 받은 적이 있고, 그때 배운 것 위주로 평상시 연습을 자주 했을 뿐”이라며 “교육받은 대로 평소에 하려 하지만 항상 부족하다”고 겸손하게 답했습니다.
지훈 씨를 비롯해 모든 참가자들은 평가 대상이 ‘반려인’이라는 사실을 잘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도그쇼처럼 반려견이 코스를 빠르게 지나가는 시험을 평가하는 게 아니라는 뜻이죠. 첫 시간대 평가를 마친 뒤 만난 김 트레이너는 “(참가자들이) 강아지에게 간식이나 칭찬 같은 보상을 깜빡한 것만 제외하고는 아쉬운 게 없다”며 “아마 보상을 잘 해주면 반려견들도 더 신나서 코스를 잘 통과하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습니다.
10시부터 시작된 두 번째 시간대에서는 긴장감이 다소 풀어진 모습이었습니다.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반려견을 반겨주는 주최 관계자들의 노력이 빛난 부분이었습니다. 특히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는 포토스팟이 마련돼 참가자와 반려견의 긴장을 풀기에 큰 도움이 됐습니다.
이번 시험에 특별한 손님들도 찾아왔는데요. 서울시와 함께 유기동물 입양카페 ‘발라당 입양센터’를 운영하는 동물보호단체 ‘동행’(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의 유기견 친구들이 시험에 참가하게 된 겁니다. 이번 시험에 응시한 친구는 ‘포터’(2)와 ‘미스터’(7)였는데요, 두 친구 모두 여느 반려견과 마찬가지로 시험 코스를 능숙하게 통과했습니다. 동행 관계자는 “포터 같은 경우 연습을 많이 하지 못해 걱정이 됐는데, 그래도 얌전하게 코스를 잘 통과해 준 것 같아 고맙다”고 밝혔습니다.
포터와 미스터는 모두 서울시내를 떠돌다 구조된 친구들이었습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동행 관계자에 따르면 포터는 구조 당시 피부병을 심하게 앓고 있었고, 큰 몸집에 비해 몸무게는 한 자릿수에 불과했습니다. 포터와 함께 시험장을 찾은 동행 관계자는 “포터의 살을 찌우는 데 주력해 지금은 13㎏ 정도로 몸무게를 회복해 지금은 입양을 가도 손색이 없을 정도”라고 자랑했습니다.
유기견 출신이지만, 지금은 가족들과 함께 행복한 삶을 보내는 친구들도 시험장을 찾았습니다. 반능시 필기 1등의 영예를 차지한 최신혜 씨와 그 반려견 ‘애드’가 대표적이죠. 애드 역시 파주의 한 동물보호단체에서 보호하던 유기견이었습니다. 당시부터 애드는 겁이 좀 많은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신혜 씨는 이 점을 언급하며 “애드가 새로운 장소나 물건에 적응하는 데 시간이 많이 필요해 시험을 잘 볼 수 있을지 걱정”이라며 “필기와 실기는 또 다른 것 같아 긴장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신혜 씨와 애드 역시 코스를 무난하게 통과했답니다.
최미리 씨의 반려견 ‘하쿠나마타타’(타타) 역시 유기견 출신입니다. 타타는 닭장에 갇혀 있다가 구출된 과거가 있었습니다. 과거의 기억 탓인지 처음에는 사회성이 그다지 좋지 못했다고 하는데, 미리 씨도 타타와 반려생활을 하는 데 다른 반려견과의 관계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가 가장 걱정한 코스 역시 다른 개들이 자리하고 있는 ‘카페 지나쳐 가기’였습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타타는 아무런 문제 없이 모든 코스를 완주했습니다.
‘대형견은 위험하다’는 편견은 아직도 사회에 깊이 자리잡고 있지만, 이번 시험에서는 보기 좋게 그 인식을 바꿔줄 ‘모범 사례’도 있었습니다. 바로 진도믹스 ‘순대’입니다. 순대는 응시를 기다리는 동안 보호자 서효정 씨의 ‘앉아’ 지시어를 곧잘 이행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내 시험에서도 차분하게 코스를 통과하는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순대는 코스를 걷는 내내 효정 씨에게 집중했고, 그럴 때마다 효정 씨도 간식으로 화답했답니다. 시험을 마치고 만난 효정 씨는 “순대와 함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반려견 순찰대’로 참여하고 있다”며 시험을 잘 치러낸 비결도 전했습니다.
이번 시험에는 5개월 된 강아지가 최연소 참가 반려견 기록을 세웠습니다. 취재진의 시선을 한 몸에 받은 반려견의 이름은 ‘밤토리’. 사실 최연소 참가 반려견이라는 사실 외에도 밤토리가 주목받은 이유는 또 있었습니다. 앞으로 가려다가 갑자기 뒤돌아 ‘역주행’을 해버린 것이죠. 아마 어린 나이 탓에 새로운 공간이 어색하게 느껴졌던 듯합니다. 밤토리 보호자 이슬아 씨는 “최연소 강아지이자 최초로 역주행을 한 강아지가 되었다”며 웃었습니다. 그는 “처음 강아지를 입양할 때는 그저 ‘귀여워서’라고 생각했는데, 키우고 나서 보니까 배울 게 많다는 걸 느꼈다”며 “동그람이를 통해 공부를 많이 하면서 이번엔 실기시험까지 응시하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슬아 씨는 “내년에는 밤토리가 성견이 되는 만큼, 그때는 또 얼마나 다른 모습을 보여줄지 궁금하다”며 내년 시험에도 꼭 응시하겠다는 소감을 전했습니다. 이는 다른 보호자들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애드 보호자인 신혜 씨는 “보호자인 내게 많은 동기부여가 되는 시험이었다”며 “매해 열린다면 매해 참여할 생각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특히 신혜 씨는 다른 보호자들에게도 반능시 응시를 적극 권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시험을 마치고 만난 김 트레이너는 “시험에 참여한 개들은 모두 훌륭했다”며 “보호자들이 조금 긴장한 탓이 실수가 있었지만, 크게 규정에서 벗어나는 행동도 없어 탈락자는 거의 없을 듯하다”고 내다봤습니다. 사실 김 트레이너는 이번 시험에 대한 기대치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전 교육이 없는 탓이 가장 컸죠. 그러나 그는 “막상 실전을 겪고 보니 보호자들도 무난하게 잘 해낸 것 같아 다행이다”라고 밝혔습니다. 내년에 열릴 실기시험에서는 이 ‘무난하다’는 평가가 어떻게 바뀔까요? 이번 시험을 통해 ‘더 성장하겠다’는 보호자들의 다짐이 이어진 만큼 좋은 결과를 기대해 봐도 될 듯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