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자동차와 NTT, 소니그룹 등 일본 유수의 대기업 8개 사가 출자해 차세대 반도체 양산을 위한 회사를 설립했다. 2027년까지 인공지능(AI), 자율주행 등에 사용될 2나노미터(nm·1nm=10억분의 1m) 이하급의 로직반도체를 양산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고, 2030년쯤에는 반도체 위탁 생산인 '파운드리' 사업에도 진출한다는 계획이다. 경제 안보 차원에서 차세대 반도체의 국산화를 꾀하는 일본 정부의 구상에 일본 유수의 대기업이 호응한 모양새다.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장관은 △도요타 △NTT △소니 △NEC △소프트뱅크 등 일본을 대표하는 8개 대기업이 10억 엔씩 출자해, 반도체 제조기업을 지난 8월 설립했다고 11일 밝혔다. 새로 설립되는 기업의 명칭은 라틴어로 ‘빠른’을 의미하는 ‘라피더스(Rapidus)’다. 세계적인 반도체 장비회사인 도쿄일렉트론 전 사장과 미국의 웨스턴디지털의 전 일본법인장 등 반도체 산업에서 경험이 풍부한 경영인도 새 법인에 합류한다.
반도체는 저장 장치 역할을 하는 메모리반도체(D램, 낸드플래시메모리 등)와 데이터 연산·처리 기능 등을 수행하는 로직반도체(CPU, AP, 이미지센서) 등으로 구분된다.
반도체는 회로 폭이 미세할수록 처리 능력이 높은데, 10나노미터 이하의 로직반도체는 대만 TSMC 점유율이 90%에 달한다. 삼성전자가 올해 3나노미터 반도체 양산을 시작했고 대만은 2025년께 2나노미터 실용화를 목표로 하는 등 차세대 로직반도체 개발은 한국과 대만이 앞서고 있다. 반면 일본에서 현재 가동 중인 로직반도체의 제조라인은 40나노로 기술이 매우 뒤처져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 유수의 기업이 모여 차세대 반도체 양산 기업을 설립한 데는, 경제 안보 차원에서 반도체의 안정적 공급을 위해 자국 내 생산을 꾀하는 일본 정부의 뜻이 작용했다. 앞으로는 한국과 대만 등 지정학적 리스크가 큰 국가에 의존하지 않고, 로직 반도체를 자체 생산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일본은 미국 등과 협력해 연내 연구 거점을 설립하고, ‘비욘드 2나노’로 불리는 2나노미터 이하 반도체 기술을 연구할 계획이다. 도쿄대와 산업기술종합연구소, 이화학연구소 등이 IBM 등 미국·유럽 연구기관과 연계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IBM은 지난해 5월 세계 최초로 2나노미터 반도체 공정 기술을 발표하기도 했다. 라피더스는 이렇게 연구한 기술을 바탕으로 첨단 반도체를 양산한다는 구상이다.
일본 정부도 탄탄한 재정 지원을 약속했다. 이미 일본 정부는 최근 발표한 2차 보정예산안(추가경정예산)에 총 1조3,000억 엔(약 12조5,000억 원)을 첨단 반도체 지원 용도로 할당한 바 있다. △ 차세대 반도체 연구 거점 정비에 3,500억 엔 △생산 거점 지원에 4,500억 엔 △ 실리콘 웨이퍼나 탄화규소 등 소재 확보에 3,700억 엔 등이 지원된다. 새로 설립되는 라피더스도 연구 거점 정비 등의 목적으로 지원을 받게 될 전망이다.
NHK는 “첨단 반도체 조달을 해외에 의존하다 분쟁 등이 발생해 조달이 곤란해지면 일본 경제에 심각한 타격이 올 수 있어 관민이 함께 양산을 목표로 한 것”이라며 “해외 제조사와의 (기술력) 차이를 메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고 보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