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록의 전설 잭 화이트, 개기월식의 밤을 파랗게 불태우다

입력
2022.11.0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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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 서울 예스24라이브홀서 첫 내한 공연

붉은 달이 스쳐간 밤, 서울 광진구 예스24라이브홀은 검푸른 록으로 들썩였다. 1998년 데뷔해 지난 사반세기 동안 21세기 미국 록을 대표하는 음악가 중 한 명으로 자리 잡은 잭 화이트(47)의 첫 내한 공연이었다.

8일 저녁 무대에 오른 ‘기타 영웅’ 화이트는 베이스 기타와 건반, 드럼의 4인조 편성으로 공연장을 꽉 채웠다. 첫 곡은 올 4월 4년 만에 발표한 솔로 4집 ‘피어 오브 더 돈’ 수록곡 ‘테이킹 미 백’. 날카로운 보컬과 예리한 기타 연주가 울려 퍼지자 1,300여 관객들은 예열 따윈 필요 없다는 듯 순식간에 펄펄 끓어오르며 열광했다.

곡과 곡 사이의 공백을 거의 두지 않은 채 곧바로 연주를 이어간 화이트와 세 연주자는 ‘피어 오브 더 돈’, 화이트가 데뷔 초 화이트 스트라이프스 멤버로 발표했던 ‘데드 리브스 앤드 더 더티 그라운드’, 역시 ‘피어 오브 더 돈’ 수록곡인 ‘더 화이트 레이븐’까지 내달리며 육중한 블루스 하드록의 진수를 선물했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 시절 붉은색으로 일관하다 솔로 데뷔와 함께 파란색을 앞에 내세우며 최근 머리카락까지 파랗게 물들인 그는 어두운 푸른색이 주는 서늘하면서도 묵직한 록 사운드로 팬들을 전율시켰다.

이날 공연은 화이트의 25년 음악사를 한눈에 훑어볼 수 있게 해 준 요약본 같았다. 첫 아내인 멕 화이트와 함께 하며 개러지 록 리바이벌(거칠고 에너지 넘치는 1960년대 록을 재현한 음악 장르)의 기수로 자리매김했던 록 듀오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주요 히트곡을 비롯해 솔로 활동과 병행하고 있는 밴드들인 래콘터스, 더 데드 웨더의 곡까지 아울렀다. 개러지 록에서 블루스 록, 하드 록, 포크 록 등 장르도 다채로웠다.

공연 구성도 독특했다. 음악인들 대부분이 미리 정해놓은 곡들(세트리스트)의 순서에 따라 연주하는 것과 달리, 화이트는 5일 필리핀 공연은 물론 이날 예정된 세트리스트와도 사뭇 다른 구성으로 무대를 이어갔다. 전날 인천에서 한국시리즈 5차전을 관람한 뒤 소셜미디어에 사진을 올린 그는 "드디어 한국에서 첫 공연을 하게 됐다"면서 “어제 경기장에 모인 사람들이 사진을 찍거나 스마트폰을 하지 않고 경기에만 몰입하고 있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날 공연도 영상 촬영을 금지하며 공연에만 집중하도록 유도했다.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화이트의 대표곡이며 전 세계 스타디움 ‘떼창’ 단골 곡인 ‘세븐 네이션 아미’였다. 공연의 대미를 장식한 이 곡이 울려 퍼지자 관객들은 하나가 돼 기타 리프(반복구절)인 ‘오오 오오오 오오’를 외쳤다. 수백 번 이 곡을 연주했던 화이트도 마치 처음 무대에서 선보이는 것처럼 팬들과 혼연일체가 돼 기타를 연주했다.

래콘터스의 일원으로 낸 앨범 ‘헬프 어스 스트레인저’(2019) 이후 팬데믹 기간 앨범을 내지 않았던 화이트는 올해 성격이 다른 두 장의 솔로 앨범을 쏟아냈고 100차례에 가까운 공연을 하며 해묵은 갈증을 해소하고 있다. 이날 서울 공연에서도 그는 조금도 지친 기색 없이 2시간을 땀과 열정으로 채웠다. 미국 그래미 12관왕이나 대중문화 전문지 롤링스톤 선정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타리스트’ 70위 같은 타이틀이 우연의 산물이 아님을 증명했다. 21세기 록의 전설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몸소 보여준 공연이었다.

고경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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