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교실에서 학생들을 만났는데, (희생자와 똑같은) 금발 여학생을 보니 울컥했어요. 저도 울고 그 학생도 울고...”
연세대 한국어학당 강사 최모씨는 요즘 강의실 빈자리를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지난달 29일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시 최씨 제자를 비롯해 국내 대학에서 한글을 공부하던 유학생들이 여럿 희생됐기 때문이다. 유학생들은 수가 적은 데다, 서로 의지하며 타향살이의 고단함을 달래는 등 친분이 남달라 사고 충격이 더 크다고 한다. 최씨는 2일 “누구보다 한국에 대한 애정이 많고, 늘 밝았던 유학생들이 희생됐다는 사실이 아직도 믿어지지 않는다”고 비통해했다.
그가 가르치던 노르웨이 국적 A(20)씨는 다른 유학생 5명과 이태원에 갔다가 죽음을 피하지 못했다. A씨는 올 초 가족들과 여행차 한국에 왔고 금세 한국에 매료됐다. 곧장 어학연수 비자를 발급받은 뒤 홀로 국내에 남았다. 떠듬떠듬 ‘가나다라’부터 배우는 1급 반에서 봄 학기를 시작한 그는 반년도 안 돼 가게에서 물건을 살 수 있을 정도로 실력이 늘었다. 급수도 2급 반으로 올라갔다. 이달 중순 예정된 기말고사에서 일취월장한 한글 실력을 보여주겠다고 의욕을 보였지만, 끝내 시험을 치르지 못하게 됐다.
최씨는 사고 다음 날 새벽 어학당 단체 대화방에서 “혹시 우리 반에도 이태원 간 친구가 있나요”라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자 한 유학생이 서툰 한국어로 A씨의 사망 소식을 알렸다. 최씨는 “뉴스로 보는 참사 현장에서 우리 학생이 목숨을 잃었다는 생각에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수업 첫날 자기소개를 할 때 여행을 정말 좋아한다고 말하던 게 계속 생각난다”며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연세대 어학당은 지난달 31일부터 정상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그러나 선생님도, 학생들도 ‘트라우마(정신적 외상)’에서 좀처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최씨는 “A씨와 같이 이태원에 갔던 학생들은 학교에 나오지 않았고, 출석한 학생들은 ‘무섭다’며 울기만 한다”고 털어놨다.
“사고 후 처음 학생들을 본 월요일(10월 31일)엔 마음이 너무 힘들었어요. 당분간 침울한 분위기가 계속될 것 같습니다.”
연세대뿐 아니라 다른 대학에서도 여러 명의 유학생이 희생됐다. 한양대 앤 마리 기스케(20)씨는 미국 연방 하원의원의 조카로 교환학생 신분으로 한국에 왔다가 안타까운 사고를 당했다. 서강대 한국어교육원에서도 중국 국적 유학생이 목숨을 잃은 것으로 전해졌다.
희생자가 나온 학교들은 교내에 추모 공간을 만들어 이들의 넋을 기리고 있다. 이날 서강대 체육관 앞에도 수백 송이의 국화꽃과 추모 문구가 부착된 칠판이 놓여 있었다.
“내가 언니 몫까지 열심히 공부할게요” “앞으로 행복만 하세요” “○○씨는 너무 친절하고 좋은 사람입니다. 미안합니다”
서툰 필체로 빼곡하게 적힌 외국인 유학생들의 글귀가 마음을 더 후벼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