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는 지금 시점에서 빼놓을 수 없는 얘기죠. 회사(하이브)에선 사실 이야기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는데 이제는 상관이 없을 것 같습니다. (군 문제로) 욕도 많이 먹었는데 좀 억울한 감이 없지 않아 있긴 합니다. 우리는 (군대 갈) 준비도 다 끝낸 상태여서 회사에 ‘이거 빨리 얘기 좀 하면 안 될까요’ 하기도 했죠. 우리가 눈물의 공연을 원치 않는다고 했으니 좀 더 참기로 했어요. 그래도 ‘얘들 아직도 안 가고 뭐 하고 있냐’는 댓글 보면 마음이 아프긴 했죠.”
영국 밴드 콜드플레이 콘서트에 게스트 참석 차 아르헨티나에 머물고 있는 방탄소년단 진이 28일병역 의무와 관련해 허심탄회하게 속내를 드러냈다. 병역 의무와 관련해 방탄소년단이 직접 언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잠이 덜 깬 듯한 표정으로 카메라 앞에 선 그는 현지 시간으로 이날 오전, 한국 시간으론 이날 밤 팬 커뮤니티 위버스를 통해 1시간여 진행한 라이브 방송의 후반부에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병역 문제와 둘러싼 뒷이야기를 전했다. 그는 “자꾸 군대를 군대라고 부르지도 못하고 간다고 말도 못하고…”라며 주체적으로 나서서 언급하지 못했던 답답함을 털어놓기도 했다. 진은 소설 ‘해리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파멸의 악당 ‘볼드모트’에 비유했다. 극 중 볼드모트는 이름도 함부로 언급해선 안 되는 무시무시한 악당으로 등장한다.
방탄소년단 일곱 멤버 중 맏형으로 올해 만 30세인 진은 연말까지 입영 연기가 가능한 상태이지만 최근 입영 연기를 철회한 상태다. 병무청이 입영 통지를 보내면 바로 입대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는 “아르헨티나 공연 끝나고 돌아가면 며칠 안에 (입영 관련 서류를) 쓸 것 같다”고 했다.
진은 그룹의 맏형으로서 2020년 11월 'BE' 앨범 발매 기념 기자간담회에서도 “나라가 부르면 언제든 응할 생각”이라고 말한 바 있다. 다만 구체적 입영 일정과 관련해선 소속사 하이브에 일임한 상태여서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군대를 볼드모트에 빗댄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그는 “애초에 ‘BE’ 앨범을 마지막으로 군대에 다녀오려 했고 멤버들도 준비가 다 끝난 상태였는데 ‘다이너마이트’(2020년 8월 발매)가 예상 외로 잘 돼서 팬들을 위해 ‘버터’랑 ‘퍼미션 투 댄스’까지 하게 됐다”고 말했다.
군대에 가고자 했던 진의 마음을 붙잡은 건 다른 멤벼들이었다. “콘서트까지 하고 갑시다”는 제안을 받아들인 것. 거기에 일생일대의 기회가 될 수 있는 그래미 시상식 후보 지명 및 공연이 추가됐다. “(올해 4월 열린) 그래미까진 끝내고 가자고 해서, 그래미 공연을 마친 뒤 군대 갈 준비를 하고 있었죠. 추운 걸 싫어해서 무조건 5월이나 6월에 가겠다고 회사에 말했고 회사에서도 ‘오케이’ 했어요.”
진은 방탄소년단 멤버들이 군대에 가겠다고 마음 먹은 근거로 지난 6월 온라인으로 그룹 활동 잠정 중단과 솔로 활동 소식을 알렸던 ‘방탄 회식’(5월 중순 촬영) 동영상을 들었다. “원래는 군대 가겠다는 내용이었는데 그걸 간접적으로 에둘러서 한 이야기였다”는 것이다. 입대 시기가 미뤄지는 사이 ‘2030 부산세계박람회(엑스포) 유치 기원 콘서트’가 기획됐다. 가급적 따뜻할 때 입대하고 싶어했던 진의 바람과 달리 다시 군에 가는 시기가 미뤄졌다.
“저는 추운 게 너무 싫으니 꼭 봄이나 가을에 가고 싶다고 했어요. 아무리 늦더라도 가을에 들어갔으면 좋겠다고 멤버들과 이야기를 나눴는데 ‘이게 우리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콘서트가 될 것 같으니 이것까지 진행해줬으면 좋겠다. (코로나19 때문에) 함성 있는 공연을 제대로 하지 못해 너무 아쉬운데 이것까지 하고 가는 게 팬들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고 멤버들이 저를 설득했어요. 고민을 진짜 많이 했죠. 팬들에게 예의를 차리고 추울 때 군대를 들어갈까, 아니면 예의 없이 공연을 하지 않고 내가 좋아하는 따뜻한 날씨에 군대를 갈까. 예의 바른 저로선 참을 수 없는 일이니 ‘그래 팬들에게 예의는 지켜야지’ 하는 생각에 공연을 하고 군에 들어가기로 했죠.”
진은 부산 콘서트 전에 군 입대를 알리기 위해 동영상도 버전 별로 여럿 찍었으나 “팬들이 슬퍼하면서 공연을 보는 걸 원치 않았”고 ‘눈물의 콘서트’를 열고 싶지 않아 발표를 미뤘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방탄소년단에 대한 병역 혜택 논란은 멤버들이나 소속사가 아닌 정치권이 불을 붙이고 언론이 기름을 끼얹었다. 지난 4월 이진형 하이브 COO(커뮤니케이션 총괄)은 "최근 몇년간 병역 제도가 변하고 있고 시점을 예측할 수 없기에 아티스트들이 힘들어하는 게 사실"이라면서 "궁극적으로는 우리 사회, 아티스트 모두 유익한 방안으로 될 수 있게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병역 혜택을 바라는 듯한 언급을 해 논란을 키우기도 했다.
스포츠와 예술계에 혜택과 달리 대중문화를 차별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지만 그 어느 쪽에도 여론이 몰리지 않고 양분되면서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진은 “여기저기서 ‘얘네는 안 가는 게 맞지 않겠냐’ ‘무조건 가야 한다’ 이러면서 과열됐다”면서 “우리는 그럴 수 있다 생각하면서도 욕을 많이 먹어 아쉽긴 하다. 그래도 팬들에게 눈물의 공연을 보이지 않아 다행인 것 같고 나름 만족한다”고 말했다.
군 입대 하는 걸 혼자 마음대로 결정하지 못하는 속사정도 상세히 밝혔다. 그는 자신이 “비정규직으로 일 하지 않느냐’면서 “회사와 재계약도 해야 하는데 밉보여서 뭐하나. 회사와 좋은 방향으로 이야기해야 하지 않겠나. 저도 앞으로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데”라고 설명했다.
진은 28일 솔로 싱글 ‘디 애스트로넛’을 발표했다. 콜드플레이의 크리스 마틴이 작곡한 것으로 방탄소년단의 프로듀서인 피독이 이 곡에서도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진은 이날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열린 콜드플레이의 콘서트 무대에 게스트로 올라 이 곡을 선보였다. 그는 "7월쯤 크리스 마틴과 이야기를 나눴고 한두 달 정도 기다려 8월인가 9월쯤 곡을 받았다"면서 "원래는 1절에만 한국어 가사가 있었는데 가사에 한국어가 좀 많이 들어갔으면 좋겠다는 마틴의 이야기에 뮤직비디오 촬영 전날 2절 가사를 한국어로 바꿨다"는 뒷이야기를 전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