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년 만에 단편소설집 낸 김연수 "아주 비관적일 때 비로소 낙관주의가..."

입력
2022.10.28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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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수 작가 인터뷰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
확장된 시간 개념과 이야기의 힘 보여줘

'미래를 기억한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기억한다는 건 논리적으로 성립되지 않는 문장이다. 하지만 김연수 소설 세계에서는 오류가 아니다. 최근 발간한 소설집 '이토록 평범한 미래'에는 과거에서 미래로 흐르는 일반적 시간의 개념을 넘어서서 쓴 이야기들이 모였다. 표제작 '이토록 평범한 미래', 2022 김승옥문학상 우수상으로 선정된 '진주의 결말' 등 총 8편의 단편이다. 유한함의 비극에도 오늘의 의미를 믿는 인물들이 빛을 발하는 작품들이다. 9년 만에 소설집을 낸 김연수(52) 작가를 지난 24일 한국일보 사옥에서 만났다.

- 오랫동안 단편을 쓰지 않았다. 이유가 있나.

"40대에 전망이 암울했다. 부모님 상을 당하고 나서 태어나는 것이 시작이면 죽는 것이 결말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이 이야기(인생)는 비극적인데, 글쓰기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단편소설을 쓰지 않았다. 전망이 암울한 얘기만 나올 것 같았다. 워낙 큰 영향을 받은 사건이라 빨리 (관련 내용을) 써야 한다고 생각했던 세월호 소재의 몇 편이 전부다."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다만 한 사람을 기억하네' '사랑의 단상 2014'가 2014년에 쓴 글이다.)

- 다시 단편소설을 쓰게 된 계기는.

"시인 백석을 이해하면서다. 이때 시간을 보는 시야가 확 넓어졌다. (2020년 출간한 장편소설 '일곱 해의 마지막'은 백석을 주제로 삼았다.) 소설 집필을 끝낼 때쯤 (이념적 글을 강요하는 북한 정권 아래에서) 그가 절필하고 축산 노동을 해야 하는 양강도 삼수군으로 간 선택을 이해하게 됐다. 백석이 숨을 거둬도 그의 시를 통해 백석의 삶은 끝나지 않고 계속될 수 있다는 것도. 종말론까지 언급되는 코로나19 시대가 (비슷한 시기에) 왔고, 내가 다른 전망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 단편을 쓰기 시작했다."

- '시간을 보는 시야가 넓어졌다'는 답이 인상적이다. 수록작 중 '이토록 평범한 미래'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에 나오는 미래를 기억하는 일과 같은 맥락으로 이해된다.

"'다시, 2100년의 바르바라에게'가 그 소설('일곱 해의 마지막')에 담지 못한 자투리 얘기로 만든 것이다. 역사서에 쓰면 끔찍한 소재지만 소설은 그렇지 않다. '할아버지'의 깨달음을 좇아가며 써서 그렇다. 그때 알게 된 것을 바탕으로 가장 최근에 '이토록 평범한 미래'를 쓰게 됐다."

소설 속 '할아버지'는 1949년 막내 여동생이 북한 정치보위부원들에게 억울하게 피살당하는 아픔을 겪었다. 철학가인 그는 "우리가 육체로 팔십 년을 산다면, 정신으로는 과거로 팔십 년, 미래로 팔십 년을 더 살 수 있다네. 이백사십 년을 경험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미래를 낙관할 수밖에 없을 거야"라고 말한다.

- 소설집 전반에서 밝음, 낙관 등을 느꼈다.

"'지금 참으면 좋은 미래가 올 거야'라는 식의 무책임한 낙관주의로 설명될까 봐 걱정했다. 나는 굉장히 비관적이다. 세계에는 악이 존재하고 누구도 우리를 도와주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협력해 조금씩 해결해 나가야 하고 대화해야 한다. 현재가 중요하다. 이런 태도를 가지려면 (상상한) 미래가 필요하다. 아주 비관적일 때 (나아진 미래를 믿어 버리는 방법밖에 없는) 비로소 '낙관주의자'가 된다."

- '진주의 결말'은 타인을 이해한다는 것에 대한 성찰이 돋보인다는 평을 받았다.
"소설의 가장 큰 기능이다.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는 사람 간의 관계 속으로 들어갈 때 만들어진다. 그 속에 들어가려면 기본적으로 자기 방어막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오해한다. 내가 50대 남자로서 30대 기자를 이해하려고 하면 결국 훈계하게 될 거다.(웃음) 문학은 나 자신에게서 벗어나는 경험을 줌으로써 그 방어막을 푸는 연습을 시켜준다."

- 문학의 입지가 축소되고 있다는 우려도 있다.

"1990년대 등단 당시에도 이미 여의도로 가라는 얘기를 들었다. 방송, 시나리오 작가를 하면 돈을 더 잘 번다고들 했다. 그런데 그때 내가 읽던 작품을 쓴 폴 오스터, 무라카미 하루키 같은 작가들은 그 후로도 계속 쓰고 있다. 미래에 문학이 끝날 거라고 전망하면 지금 한 자도 쓸 수 없다. 나는 문학을 선택하고 싶다. 시대를 못 보는 게 아니라 내 미래를 선택한 거다."

- 다음 장편소설은 언제쯤.

"임진왜란 때 일본으로 끌려가 가톨릭 사제를 만난 조선인 형제 이야기를 10년째 쓰고 있다. 이제야 그들의 삶을 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내후년쯤에는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

진달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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