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의 변심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둘러싼 검찰 수사가 급물살을 타고 있다. 유 전 본부장은 최근 입장을 바꿔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의 대선자금 수수 혐의에 대해 입을 열었다. 유 전 본부장이 "내가 안 한 건 덮어 쓰면 안 되고, 이재명 명령으로 한 건 이재명이 써야 할 것"이라며 앞으로도 검찰 수사에 적극 협조하겠다고 밝힌 터라, 그의 '입'에 따라 이 대표의 정치적 운명이 결정될 수도 있다. 측근이 등을 돌리면 감옥신세를 면치 못했던 정치인들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유 전 본부장에 대해 여러 차례 "측근이 아니다"라며 "민간개발업자를 만나는 걸 알았다면 해임했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측근이라면 정진상, 김용 정도는 돼야 하지 않나"라고도 말했다. 하지만 유 전 본부장은 자신을 이 대표 측근으로 생각했고, 주변에서도 그렇게 분류했다. 대장동 개발사업을 주도했던 남욱 변호사는 검찰에서 이 대표와 유 전 본부장의 관계를 묻자 "유동규 말로는 정진상이 넘버1, 김용이 넘버2, 자기가 넘버3라고 했다"고 밝혔다.
과거에도 전직 대통령 등 거물급 정치인들이 측근 관리 실패로 발목이 잡힌 적이 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을 겨냥한 다스 실소유주 의혹과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사는 '영원한 비서관'으로 불렸던 김희중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이 입을 열면서 급물살을 탔다. 'MB 집사'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과 '금고지기' 이병모 전 청계재단 사무국장 등 재산관리 담당 측근들도 줄줄이 검찰 수사에 협조하자, 이 전 대통령은 결국 구속됐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1995년 박계동 전 의원이 국회에서 차명계좌를 폭로해 불거진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됐다. 육사 후배이자 하나회 회원인 이현우 전 청와대 경호실장도 검찰에 자진 출석해 "재임 중 조성해 사용하다 남은 통치자금"이라며 비자금의 실체를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은 측근들의 실토로 대국민 사과를 하며 영어의 몸이 됐다.
법정에서도 측근들 진술은 정치자금법 위반과 뇌물 혐의를 뒷받침하는 핵심 증거가 됐다. 이 전 대통령의 경우 김희중 전 실장과 김백준 전 기획관, 전직 다스 임원들의 진술이 일치한 점이 유죄 근거가 됐다. 노 전 대통령도 이현우 전 실장의 진술이 결정적이었다. 이 전 실장은 기업 대표 35명에게 2,839억 원을 수수한 노 전 대통령 혐의에 대해 돈을 받은 내역을 법정에서 자세히 밝혔다. 그의 진술과 검찰의 자금추적 결과가 일치하자 노 전 대통령 혐의 대부분은 유죄로 인정됐다.
이재명 대표의 경우 '넘버3'로 통했던 유 전 본부장이 김용 부원장에게 불법 대선자금을 건넸다고 인정하면서 이 대표의 인지 여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그는 "천천히 말려 죽일 것"이라고 예고하며, 이 대표 관련 이야기도 검찰에서 진술할 것임을 시사했다. 다만 김용 부원장과 정진상 민주당 대표 정무조정실장 등 이 대표의 '진짜 측근들'은 혐의를 부인하고 있어 검찰 수사가 이 대표로 뻗어나갈지는 단정할 수 없다. 유 전 본부장이 이 대표에 대한 배신감과 섭섭함 때문에 이야기를 부풀렸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결국 진술보다는 이를 뒷받침하는 객관적 증거 유무에 따라 수사 성패가 갈릴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유 전 본부장은 자신이 대장동 사건의 몸통이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은 것 같다"며 "책임 떠넘기기 전략인지, 근거가 있는 주장인지 검찰이 잘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