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훌륭한 나라지만 심각한 경제 위기에 처했다. 그것이 내가 출마하는 이유다.”
리시 수낵(42) 차기 영국 총리는 23일(현지시간) 총리 트위터에 올린 총리직 출사표에서 이같이 밝혔다. 영국이 경기침체 기로에 선 상황에서 경제 살리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아 대영제국 영광을 되살리겠다는 포부다.
영국 일간 가디언 등에 따르면, 차기 총리로 당선된 그에겐 리즈 트러스 총리의 실책이 초래한 극심한 경제 혼란상을 수습하고, 침체로 접어든 영국 경제를 살려낼 중책이 맡겨졌다.
과거 ‘해가 지지 않는 나라’라는 별칭이 무색할 정도로 현재 영국의 경제 상황은 심상치 않다. 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10%가 넘었고, 달러 대비 영국 파운드화 가치는 올해 들어 16%나 하락했다. 3대 신용평가사는 영국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하향 조정하기도 했다. 국제사회에서 영국에 대한 신뢰가 바닥으로 떨어졌다는 얘기다.
시사주간 이코노미스트는 영국의 불안정이 이탈리아와 닮아간다며 영국(Britain)과 이탈리아(Italy)를 합친 브리탤리(Britaly)라는 신조어까지 내놨다. 이 같은 상황에서 글로벌 투자은행(IB) 골드만삭스 출신의 ‘경제통’ 수낵 차기 총리가 ‘소방수’로 등장한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라는 게 외신들의 분석이다.
관건은 새 총리가 이를 어떻게 헤쳐 나가느냐다. 당장 오는 31일 재무부가 어떤 새 예산안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이날 영국인들이 증세와 지출 삭감의 고통을 어느 정도 감당해야 할지 판가름 날 전망인데, 예산안에 증세, 공공지출 축소 등 민감한 내용이 포함되면 보수당의 리더십이 또다시 흔들릴 수 있다.
유럽연합(EU)과의 결별(브렉시트)이 불러온 정치·경제 후폭풍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도 난제다.
당장 코로나19로 경제에 내상을 입은 상황에서 이어진 ‘홀로서기’는 영국 경제에 적잖은 부담이 됐다. EU 단일 시장과 관세동맹에서 탈퇴하면서 △상품 교역 절차는 더 복잡해졌고 △관세도 추가된 데다 △외국인 노동자 감소로 인건비까지 뛰었다. 우크라이나 전쟁 장기화가 초래한 에너지 가격 폭등 등 위기에 기민하게 대응하려면 EU와 손을 잡아야 하지만 ‘이혼 합의’가 끝난 상황에서 선뜻 손을 내밀기도 쉽지 않다.
이 때문에 'EU 회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 영국 아이뉴스는 영국인 59%가 ‘브렉시트가 경제를 악화시켰다고 생각한다’고 답한 토니블레어국제변화연구소 여론조사를 인용하며 “우리는 이제 끔찍하지만 피할 수 없는 브렉시트의 끝을 목격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날 런던에서 시민 수천 명이 “영국을 정상 궤도에 올려놓는 가장 좋은 방법은 EU에 다시 합류하는 것”이라며 재가입을 촉구한 것도 이 같은 분위기를 반영한다.
불안한 정국 수습과 당 분열 봉합은 가장 어려운 숙제다. 수낵 차기 총리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 이후 다섯 번째 총리다. 정치적 고비 때마다 보수당 의원들이 극한의 대립을 벌이면서 힘겨루기를 했고, 이는 총리가 바뀌는 정치 혼란으로 이어져 왔다.
지난 여름 보리스 존슨 전 총리의 '도덕성 스캔들' 당시 사임에 결정적 역할을 하며 '변절자' 낙인이 찍힌 수낵 차기 총리가 보수당 강경파를 끌어안지 못할 경우 트러스 총리(44일)의 뒤를 이어 또다시 단명 총리가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스코틀랜드 독립 움직임도 새 총리에겐 부담이다. 브렉시트 투표 당시 '스코틀랜드 독립'을 천명하며 EU 잔류 의지를 밝혔던 니컬라 스터전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은 내년 10월 독립 재투표를 재추진 중이다. 앞으로 이와 관련한 불확실성이 영국을 뒤흔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