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겨냥한 검찰 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국민의힘은 정국을 주도할 기회를 잡았다. 하지만 표정이 밝지만은 않다. 야당과의 강대강 대치국면이 심화할수록 쟁점 법안과 내년도 예산안 통과에 난항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3일 국회 기자간담회에서 "거대 야당과의 협상을 맡고 있는 저로서는 경색 상황이 대단히 우려스럽다"며 "민주당이 의사일정 진행을 거부하고 협력하지 않는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을 향해 "수사는 수사대로 맡겨서 승복하고, 국회 본연의 일에 집중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용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서욱 전 국방부 장관의 잇단 구속으로 여야 대치가 극한으로 치닫는 상황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여야는 24일 법제사법위원회 등 10개 상임위원회 종합감사를 끝으로 올해 국정감사를 대부분 마무리짓고, 내년도 예산안 및 주요 법안을 중점적으로 들여다볼 참이다. 특히 여당은 윤석열 대통령의 주요 공약이 담긴 법안과 예산안을 처리해 정부를 뒷받침해야 하는데, 여소야대 구도에서 민주당의 협조 없이는 불가능하다.
당장 윤석열 정부가 추진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 세제개편안 등 쟁점 법안은 국회 통과 가능성이 더 낮아졌다. 가뜩이나 민주당은 여성가족부 폐지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를 비롯한 감세 정책에 반대 입장을 보여왔는데, 정국이 급랭하면서 협상을 통한 타협안 도출이 더 어려워졌다. 앞서 1가구 1주택자 종합부동산세 부담 완화를 위해 당정이 추진했던 3억 원 특별공제도 올해 적용을 위한 마감 시한(10월 20일)을 넘겨 사실상 무산됐다.
예산안 심사도 폭풍전야 분위기다. 민주당은 노인 일자리, 지역화폐 등 문재인 정부 중점사업 예산이 삭감된 점을 문제 삼아 정부예산안에 대대적 손질을 가할 태세다. 국회선진화법에 따라 여야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12월 1일 정부 원안이 본회의에 자동 부의되지만,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가진 상황에서 정부안이 통과될 가능성은 낮다.
오는 25일 윤 대통령의 예산안 시정연설이 여야 협치의 첫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는 윤 대통령의 "이XX" 발언을 문제 삼으며 "윤 대통령의 대국민·국회 사과 없이는 시정연설을 용인하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이에 주 원내대표는 "대통령 시정연설은 듣고 싶으면 듣고 듣기 싫으면 듣지 않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 국회의 책무"라고 비판했다.
한편 국민의힘과 정부, 대통령실은 이날 서울 삼청동 총리 공관에서 비공개 고위 당정 협의회를 열고 국정감사 이후 정기 국회에서의 예산안과 주요 법안 처리와 관련한 상황을 공유하고 대책을 논의했다. 정국 경색 변수가 예산안 처리에 미칠 영향 등이 테이블 위에 오른 것으로 전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