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세안 철회 후폭풍으로 조기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의 운명이 더 위태로워졌다. 트러스 총리가 임명한 수엘라 브레이버먼 내무부 장관이 "잘못했다면 책임을 지고 물러나는 게 정치"라는 '뼈 있는 말'을 남기고 돌연 사임하면서다. 보리스 존슨 전 총리를 무너뜨린 '내각 엑소더스'의 전조란 해석도 나온다. 트러스 총리는 "사퇴는 없다"고 거듭 선을 그었다.
브레이버먼 전 장관은 19일(현지시간) 트러스 총리에게 서한을 보내는 방식으로 사표를 냈다. 장관 취임 43일 만에 물러난 그는 1834년 이후 영국의 최단명 내무부 장관이 됐다. 출범 약 50일째인 트러스 내각의 장관 퇴진은 벌써 두 번째다. 감세안 책임자인 쿼지 콰텡 전 재무부 장관은 닷새 전 경질됐다. 내무부와 재무부 모두 내각의 핵심 부처이다.
브레이버먼 전 장관이 밝힌 표면적 사임 이유는 '보안 규칙 위배'이다. 그는 "이민 정책에 대한 의회 지지를 받고자 정부 공식 문서를 개인 메일 계정으로 내보냈는데, 이건 규칙 위반"이라고 했다.
'진짜 이유'는 트러스 총리 사퇴를 압박하기 위해서라는 게 영국 정치권의 해석이다. 브레이버먼 전 장관은 "우리가 실수하지 않은 것처럼, 또한 다른 사람들이 그 실수를 보지 못하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일이 마법처럼 잘 풀리길 바라는 건 진정한 정치가 아니다"라며 "나는 실수를 했고 책임을 느끼기에 물러난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영국 가디언은 "궁지에 몰린 트러스 총리에게 도전장을 던진 것"이라고 해석했다.
브레이버먼 전 장관의 사표가 내각 줄사퇴로 이어지며 존슨 전 총리 전철을 밟게 될 것이란 전망이 고개를 들고 있다. 올해 7월 존슨 전 총리는 파티게이트 등 파문으로 사퇴 압박을 받고도 한동안 버텼지만, 보건부·재무부 장관의 기습 사퇴가 50명 넘는 정부 관료들의 사퇴로 번지며 결국 물러났다.
트러스 총리의 입지는 좁아질 대로 좁아져 있다. 집권 보수당의 찰리 워커 의원은 19일 BBC 라디오에서 "트러스는 총리가 되지 말았어야 했다. 내일이라도 물러나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 더선은 트러스 총리의 권위를 "너덜너덜하다"고 표현했다.
트러스 총리는 버티고 있다. 그는 의회에 출석해 "나는 싸우는 사람(Fighter)이지 그만두는 사람(Quitter)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새 내무부 장관으로 그랜트 섑스 전 교통부 장관을 임명했다. 섑스 장관은 지난달 보수당 대표 경선에서 트러스 총리를 지지하지 않은 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