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23시즌 프로농구가 15일 개막했지만 매년 코트 위에 서 있던 인물 한 명이 보이지 않았다. 그 주인공은 2001~02시즌 대구 오리온스 우승과 2015~16시즌 고양 오리온스 우승의 주역 김병철 전 수석코치다. 그는 “구단 매각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 정말 힘들었다”면서도 “(새 구단에) 남은 선수들이 팀과 팬들에게 보답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 이후 한 팀에서만 뛴 ‘원클럽맨’이자 오리온스의 유일한 영구결번(10번) 선수인 ‘피터팬’ 김 전 코치를 최근 서울 중구 한국일보 본사에서 만났다.
“농구를 잊고 살려고 했어요. 농구 관련 매체도 아예 안 봤고, 앞으로 제가 가야 할 길에 대해 천천히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전 코치는 덤덤하게 근황을 전했다. 갑작스럽게 결정된 구단 매각에 대한 아쉬움과 농구 인생 중 처음으로 갖게 된 휴식의 여유로움이 교차된 듯한 말투였다. 그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거나 충남 서산·금산 등으로 낚시를 다닌다”며 “심리학 관련 책도 많이 읽고 있다”고 전했다.
올 초 오리온스 팬들은 구단 매각 소식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누구도 전후 사정을 설명해주지 않아 팬과 구단 사이에 오해도 쌓였다. 우선 정확한 내막이 궁금했다.
“구단 매각과 관련해 많은 소문이 있었어요. 그런데 구단이 절대 그럴 일 없다고 해서 저도 믿었습니다. 선수들도 동요하지 않게 많이 눌러놨죠. 그런데 4월 29일에 (고양 오리온스) 단장님이 점심 식사를 함께 하자고 전화를 하시더라고요.”
김 전 코치는 이 자리에서 데이원스포츠(고양 캐롯 운영사)에 구단 매각이 결정됐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게 됐다. “머리가 멍했다”고 했다. “아무 생각도 안 났어요. 이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오리온스를 인수한 캐롯은 ‘신생팀 창단’이라는 표현을 쓰고 있다. 오리온스의 역사를 이어가기보단 새 구단으로서 행보를 밟겠다는 의미로 읽힌다. 쉽게 말해 캐롯이 향후 우승을 해도 V3(3회 우승)가 아닌 V1이되고, 고양체육관에 걸려있던 김 전 코치의 영구결번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는 뜻이다. 김 전 코치는 “괜찮다”면서도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김 전 코치의 새 구단 합류 불발 소식은 팬들에게 '2차 충격'이었다. 이에 대해 김 전 코치는 “오리온스에서는 (내 자리를) 챙겨주려고 했던 건 맞는 것 같은데, 정확한 내막은 나도 잘 모르겠다”고 했다. 26년간 오리온스의 상징이었던 김 전 코치도 자신의 거취가 결정된 경위를 명확히 모르고 있다는 의미다.
사실 김 전 코치와 구단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고 있다는 소문은 몇 년 전부터 돌았다. 2019~20시즌 감독대행을 맡았던 김 전 코치가 차기 시즌 정식 지휘봉을 잡는 대신 다시 수석코치를 맡으면서부터다. 시즌 종료 직후까지만 해도 김 전 코치의 승격이 기정사실화 된 분위기였다. 그런데 모두의 예상을 뒤엎고 오랜 기간 야인 생활을 하던 강을준 전 창원 LG감독이 오리온스의 새 감독으로 부임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구단 수뇌부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소문도 흘러나왔다.
이에 대해 김 전 코치는 “이 또한 정확한 내막은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만 “코로나19 때문에 2019~20시즌이 조기종료 됐는데, 당시 구단은 ‘시즌이 끝난 지 얼마 안 돼 아직 준비가 안 됐으니 (감독 승격 문제는) 조금만 기다려달라’고 얘기했다”며 “그런데 2020년 4월 28일 회사로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고 가보니 이미 강을준 감독님이 자리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석연치 않은 일들이 연속으로 이어졌지만 그는 억울함보다는 기존 선수들과 새 팀의 선전을 기원했다. 김 전 코치는 “새 감독이 본인의 스태프를 데리고 오는 건 관례상 당연하다고 생각한다”며 “(자유계약선수로 풀렸던) 한호빈 등 제가 팀에 잔류를 권했던 선수들이 새 구단에서 부상 없이 제 기량을 발휘했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만약 그에게 향후 캐롯 감독직 제의가 들어온다면 이를 받아들일지도 궁금했다. “현재 김승기 감독과 다른 코칭스태프가 있기 때문에 (이와 관련한 언급을 하는 건) 실례라고 생각해요. 다만 먼 훗날이라도 고양 팬들과 다시 만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긴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