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 전 법무부 장관을 상대로 자행된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국가정보원(국정원) 불법 사찰에 대해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서울중앙지법 민사34단독 김진영 부장판사는 17일 조 전 장관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조 전 장관은 지난해 6월 "국정원의 권한 남용 가능성을 없애야 한다"며 국가를 상대로 2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국정원이 불법 사찰을 자행하고, 여론까지 조작해 정신적 피해를 당했다는 취지였다.
소송 근거는 조 전 장관에 대한 사찰 내용이 적혀 있는 국정원 문건이었다. 조 전 장관은 지난해 5월 국정원을 상대로 정보 공개를 청구해 받은 문건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공개했다. 문건에 따르면, 국정원은 2011년 원장님 지시 말씀을 통해 조 전 장관을 '종북세력' '종북좌파' 등으로 규정한 뒤 "문제 인물들의 비리·종북 실체 등을 적나라하게 폭로할 것"이란 방침을 세웠다. 2016년에는 "보수시민단체 애국진영이 조 전 장관을 상대로 항의 전화와 SNS상 규탄 댓글달기를 하고 있다"는 내용의 내부보고도 올렸다.
정부는 사찰은 인정하지만, 사회 전반에 알려진 내용이기 때문에 배상 책임을 질 수 없다고 맞섰다. 조 전 장관의 정신적 피해와 사찰 간 인과관계가 불분명하다는 입장도 고수했다. 일부 사찰 행위에 대해선 손해배상 청구 소멸시효가 지났다고 주장했다.
법원은 조 전 장관 손을 들어줬다. 김진영 부장판사는 "국정원이 조 전 장관을 상대로 사이버 활동을 했고, 애국진영도 국정원 관여로 (규탄) 활동을 한 것으로 인정된다"며 "국정원이 정치 관여를 금지하는 법률을 어겨 조 전 장관의 표현의 자유 등을 중대하게 침해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소멸시효 도과 주장에 대해서도 "국정원의 최종적 불법행위는 2016년 7월에 이뤄졌고 소송은 (그로부터) 5년 안에 제기돼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 김 부장판사는 "2017년 9월 국정원의 불법사찰 관련 내용을 담은 기사만으로는 조 전 장관이 (불법 사찰 내막을) 확인하기 곤란한 것으로 보여 단기소멸시효(3년) 완성 주장도 인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김 부장판사는 "국정원이 조 전 장관의 인권을 의도적으로 침해하는 등 결코 해서는 안 될 행위를 했다"며 "조 전 장관에게 5,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조 전 장관 측은 판결 직후 입장문을 내고 "앞으로 모든 국가기관에서 국민의 인권을 존중하고 실질적 법치주의를 확립하여 다시는 이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