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피살 공무원, 한자 적힌 구명조끼 미스터리... 중국어선과 연관성 있을까

입력
2022.10.15 0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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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적힌 구명조끼 입고 다른 어선 탑승 가능성
감사원 "당국 알고도 미분석" 월북 여부 스모킹건

2020년 9월 서해상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해양수산부 공무원 이대준(사망 당시 47세)씨 사건 조사 당시, 당국이 한자(漢字)가 적힌 구명조끼를 이씨가 착용하게 된 과정을 제대로 조사하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이씨가 한자 구명조끼를 입은 과정이 월북과 표류를 판단하는 ‘스모킹 건’이 될 수 있었지만, 당시 정부가 ‘자진 월북’으로 몰아가기 위해 조사를 소홀히 했다는 게 감사원 판단이다. 이씨가 한자 구명조끼를 입은 경위를 두고는 다양한 의견이 나오고 있다.

14일 감사원이 국방부 등 관계기관에서 확인한 자료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이씨가 북한군에 처음 발견됐을 때 한자 구명조끼를 입고 팔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정부는 이씨가 실종됐다가 북한군에 발견되기까지 38시간 동안 그가 표류한 것으로 추정되는 서해 북방한계선(NLL)과 경비계선(북한 주장 경계선) 사이의 해역을 운항한 배가 중국 어선뿐이란 사실도 파악했다. 해양경찰도 이씨가 승선했던 어업지도선인 무궁화 10호와 민간어선에서 한자가 적힌 구명조끼가 사용되지 않는다는 사실과 국내에서도 유통·판매되지 않는다는 점을 확인했다.

이런 정황을 종합하면, 이씨가 실종 직후 중국 어선의 도움을 받아 구명조끼를 입고 붕대까지 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 하지만 이씨가 표류 중 도움을 받았다면 왜 중국 어선에서 다시 바다에 빠져 북한 해역까지 갔는지 의문이 남는다.

이 때문에 중국 어선이 해상에 있던 이씨에게 구명조끼와 붕대를 던져줬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일각에선 중국 어선이 서해상에서 많이 왕래하는 만큼 해상에 떠다니던 중국 구명조끼를 이씨가 입었거나, 이씨가 탔던 무궁화10호 내부에 중국 구명조끼가 있어 이를 착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되지만 설득력이 떨어진다.

당국이 사건 초기에 구명조끼와 붕대 관련 조사를 자세히 했다면 이씨가 월북 의사가 있었는지, 단순 표류였는지 좀더 명확하게 판단할 수 있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경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구명조끼 관련 내용은 감사원 주장일 뿐"이라며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인 만큼 특별하게 드릴 말씀이 없다"고 말했다.

감사원은 전날 이대준씨 피살 사건과 관련해 당시 관계당국이 '자진 월북' 결론과 맞지 않는 정황들을 묵살하는 등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왜곡했다고 보고 국가안보실과 국방부, 통일부, 국가정보원, 해경 등 5개 기관 관계자 20명에 대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


이환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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