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산 천연가스를 수입할 때 수입 가격의 상한을 두자'는 약속, 이른바 '가스 가격 상한제' 도입을 위한 유럽연합(EU)의 협의가 지지부진하다.
가격 상한제의 기대 효과는 크게 두 가지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전쟁 자금줄을 말리고, 가스 공급 가격을 낮추는 것이다. EU가 바라는 바인데도 올해 8월 시작된 협의가 여태 접점을 찾지 못한 건 왜일까.
올해 EU 의장국인 체코 프라하에서 12일(현지시간) EU 에너지장관 회의가 열렸다. EU 집행위원회가 푸틴발 에너지 위기 대응책으로 다음 주 발표할 '에너지 관련 공동 조치'에 들어갈 내용을 확정하기 위해서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유럽의 전기요금은 지난 10년 평균보다 10배 넘게 올랐고, 가스 가격도 약 15배 치솟았다.
요제프 시켈라 체코 산업장관은 회의 후 "내년 여름엔 EU가 가스를 공동구매할 것"이라며 "내년 겨울엔 가스 공급이 안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문제는 올겨울이다. '가스 가격 상한제를 곧바로 채택해 겨울에 대비할 것'이라는 전망이 있었지만, 합의는 어긋났다. 아담 기부르제 체트베르틴스키 폴란드 기후환경부 차관은 "17개국이 가격 상한제를 지지하고 있고, 여전히 더 많은 국가들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EU 전문매체 유락티브는 12일 보도했다. 로이터통신도 복수의 EU 외교관들을 인용해 "의견 통일이 이뤄지지 않았다"고 전했다.
합의는 처음부터 쉽지 않았다. 독일, 네덜란드 등의 가격 상한제 반대가 결정적이었다. 독일은 "주마다 의견이 달라서 곤란하다"는 입장이고, 네덜란드는 "가격 상한제의 장점과 단점을 모두 살펴야 한다"며 미온적 반응을 보였다고 유락티브는 보도했다. 독일 등은 "가격에 상한을 두는 것이 일시적 조치라고 해도 국가가 지나치게 시장에 개입해선 안 된다"는 원칙을 들고 나왔다. "가격을 제한하면 가스 수출국이 수출을 꺼려 공급량이 더 줄어들 것", "정부가 가격을 인위적으로 통제하면 소비자들이 가스를 낭비해 수요가 늘어날 것" 같은 논리도 뒤따랐다.
가격 상한제를 찬성하는 국가들은 독일 등의 반대를 '자국 이기주의'라고 비판한다. 국가 재정과 가스 비축량에 여유가 있는 부자 국가들이 유럽 전체의 공동 대응 노력을 외면한다는 것이다. 독일 정부가 최근 에너지 가격 급등에 따른 민생 대책으로 2,000억 유로(약 278조 원)의 국비를 투입하겠다고 발표하면서 시선이 더 싸늘해졌다.
EU는 이번 주말 협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산업용, 난방용, 발전용 가스 중 발전용 가스 가격에만 상한제를 도입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스페인, 포르투갈이 시행했던 정책이라 '이베리아 모델'로 불리는데, 가스 가격 인상이 전기 요금 인상으로 이어지는 것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가격 상한제와 가스 수요 억제책을 동시에 도입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