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주제 폐지 얘기도 나오는데"...찰스 3세 대관식, 짧고 덜 화려하게

입력
2022.10.12 19:00
대관식, 내년 5월 6일 웨스트민스터 사원 개최
영국 경제난∙군주제 폐지론 '눈치'... "소박하게"

찰스 3세 영국 국왕 대관식이 내년 5월 열린다. 왕관을 물려받으며 영국과 영연방 국가 원수가 됐음을 선포하는 자리다. 그러나 마냥 성대하진 않을 전망이다. 영국 경제가 휘청거리고 있는 데다, 군주제 폐지 여론 눈치까지 봐야 하는 탓이다.

대관식은 토요일인 내년 5월 6일 런던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거행될 예정이라고 버킹엄궁은 밝혔다. 대관식은 상징적이면서도 종교적인 행사다. 지난달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서거 직후 찰스 3세가 이미 왕위를 넘겨받았지만, 왕실 상징물을 영국 국교회로부터 전달받으며 즉위를 공식 확인하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대관식은 '황금 보주(Golden Orb)'라는 작전명으로 준비된다.

식은 큰 틀에서 전통을 따른다. 1,000년 넘게 그랬듯 캔터베리 대주교가 거행한다. 대주교는 왕에게 성유(성스러운 기름)를 바르고, 444개 보석이 박힌 순금 왕관(세인트 에드워드 왕관)을 씌운다. 웨스트민스터 사원 여는 것도 전통 방식이다.

찰스 3세는 70년을 후계자로 살다 왕이 됐다. 화려하게 치를 법하지만, 왕실은 오히려 규모를 줄이느라 바쁘다. 가디언에 따르면, 행사 준비를 맡은 노퍽 공장 임무는 '더 간단하고, 짧고, 다양한 예식을 만들라'는 것이다.

'찰스 3세가 식을 1시간만 치르길 원한다'는 추측에 대해서도 왕실은 부인하지 않고 있다. 1953년 여왕 대관식은 3시간 넘게 진행됐다. 여왕 대관식 참석자는 8,000명 이상이었지만, 이번엔 2,000명 정도가 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BBC는 왕실 소식통을 인용해 "훨씬 더 적은 손님을 맞게 될 것"이라고 전했다. 참석자들이 엄격한 예복보다 일상적인 정장을 착용하도록 권하는 방안을 왕실이 검토 중이라는 보도도 나왔다.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건, 대관식이 세금으로 치러지기 때문이다. 영국이 최근 국가 신용 등급 하락 위기까지 맞닥뜨리며 경제 위기 심각성을 거듭 절감한 상황에서, 막대한 돈을 쓰는 건 왕실·정부 모두에 부담이다. 앞서 여왕 서거 당시, 장례식·대관식 비용에 약 60억 파운드(9조3,876억 원)가 들 것이라는 분석(인도 이코노믹타임스)이 나왔었다. 찰스 3세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강력한 것도 아니다. 오히려 여왕 서거 후 뜨거워진 군주제 폐지론이 대관식을 계기로 다시 불거질 가능성이 크다.

버킹엄궁은 대관식에 대해 "오랜 전통과 화려함을 바탕으로, 오늘날 군주의 역할을 반영하며, 미래를 내다볼 것"이라고 소개했다. '권위를 충분히 드러낼 수 있도록 화려하되, 위화감이나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도록 소박해야 한다'는 모순을 달성해야 하는 고민이 묻어난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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