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 버냉키의 경고 "2008년과 달라… 신흥국 자본 유출 주의해야"

입력
2022.10.11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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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강달러 등 세계적 사건 주시해야”
“유럽과 신흥시장 불안, 미국에도 영향”

“14년 전과는 분명히 다르다. 지금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상황들이 글로벌 금융 상황을 악화시킬 수 있다.”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벤 버냉키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은 1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브루킹스연구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미국의 금융 시스템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보다는 개선된 상태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강(强)달러 등 다양한 외부 요인이 산적한 데다 유럽과 아시아 등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이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대비에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다.

”연준 인플레 잡기 어려운 도전”

버냉키 전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2022년과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경제 상황 차이를 먼저 꺼내 들었다. 그는 2006년부터 2014년까지 미국 연준 의장직을 맡으며 제로(0) 금리와 양적 완화 정책으로 금융위기에 맞섰던 인물이다.

버냉키 전 의장은 “14년 전과 달리 현재 금융시스템 건전성은 크게 개선됐지만, 금융 부문에서 문제가 발생하지 않더라도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변수로 발생한 실물 부문 문제가 금융 시스템으로 번질 수 있는 점을 주시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원인은 ‘부실대출’이라는 시스템 내부 문제이지만, 현재 경제 위기는 외부 요인에서 출발했고, 향후 금융 부문으로 전이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유럽의 경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천연가스 공급이 중단되면서 금융 기관들이 재정적 압력을 받을 수 있다고 내다봤다. 아시아 등 신흥시장은 “매우 강한 달러로 많은 자본 유출 위험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했다.

연준이 물가상승(인플레이션)에 맞서고 있는 상황을 두고는, 경기 침체를 촉발하지 않고 상승세를 낮추는 ‘매우 어려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고 평가했다. 또 연준이 인플레이션 목표치로 잡고 있는 연 2%를 변경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도 덧붙였다. “인플레이션 목표는 ‘중기 목표’이며 6개월 이내에 충족해야 하는 수치가 아니다”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버냉키 전 의장은 전날 밤 휴대폰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시카고에 거주하는 딸이 집으로 전화를 걸어 노벨상 수상 소식을 알려줬다고 소개했다. 그는 “노벨 경제학상을 받을 것이라고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다이아몬드 교수 “연준 금리인상 신중해야”

버냉키 전 의장과 경제학상을 공동 수상한 더글러스 다이아몬드 시카고대 교수는 별도 기자회견에서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릴 경우 시장의 공포 확산을 막기 위해 신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더글러스 교수는 “정교하게 조직된 금융 시스템이라도 공포 자체에는 취약하다”고 말했다.

그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연준의 정책을 언급하면서 “버냉키 전 의장은 자신의 연구를 정책으로 체화했다”면서 “다른 중앙은행들도 당시 상황에서 교훈을 얻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이아몬드 교수는 또 다른 공동 수상자 딥비그 교수와 함께 ‘뱅크런(은행의 예금 지급 불능을 우려한 고객들의 대규모 예금인출 사태)’에 관한 이론적 모형을 제공하는 논문을 썼다.

AFP통신은 딥비그 교수가 이날 수상 후 최근 경제문제와 관련해 ‘긍정적’이라는 전망을 밝혔다고 전했다. 딥비그 교수의 이 같은 답변은 최근 경제상황이 반드시 은행 산업 붕괴를 동반한 경제위기를 가리키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라고 AFP통신은 설명했다.

노벨 위원회는 경제학상 수상자를 발표하면서 “올해 수상자들의 통찰력 있는 연구 덕분에 오늘날 우리는 금융위기에 대처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허경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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