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푸틴 70세 생일에 굴욕 안기다... 反독재·反푸틴에 수여

입력
2022.10.07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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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자 면면, 푸틴에 대한 강한 질책"
#공동 수상자
벨라루스 인권운동가 알레스 비알리아츠키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알 
우크라 인권단체 시민자유센터

올해 노벨평화상은 벨라루스의 인권운동가 알레스 비알리아츠키와 러시아 인권단체 ‘메모리알', 우크라이나 인권단체 '시민자유센터(Center for Civil LibertiesㆍCCL)’가 공동 수상한다. 노르웨이 노벨위원회는 7일 이 같은 선정 결과를 발표했다.

수상자 면면에는 오랜 기간 러시아인과 주변국 국민의 인권을 탄압하고 올해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을 일으킨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메시지가 선명하게 담겼다. 노벨위원회는 수상자 발표 기자회견에서 푸틴 대통령을 향해 “인권운동가 탄압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위원회는 수상자 발표문에서도 “올해 수상자들은 인본주의적 가치와 반(反)군국주의, 법치를 지키려는 끈질긴 노력을 통해 평화와 박애라는,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필요한 비전을 되살렸다”며 푸틴 대통령을 겨냥했다. 공교롭게도 이날은 푸틴 대통령의 70세 생일이었다.

비알리아츠키, '친푸틴' 벨라루스 독재 정권에 맞선 민주화 투사

알레스 비알리아츠키(60)는 1980년대부터 벨라루스의 민주주의와 평화를 위해 일생을 바친 민주 투사다. 28년째 집권 중인 '유럽의 마지막 독재자' 알렉산드르 루카셴코 벨라루스 현 대통령이 1996년 개헌을 강행해 임기를 연장한 뒤 전국에서 반독재 투쟁이 불붙자 '봄'이라는 뜻의 시민단체 '비아스나'를 결성해 투옥된 운동가들을 지원했다. 이후 비아스나는 정권이 정치범에게 자행한 고문 행위를 기록하고 그에 맞서 싸우는 인권단체로 성장했다.

루카셴코 정권은 눈엣가시 같은 존재인 비알리아츠키를 탄압했다. 비알리아츠키는 2011년 수도 민스크 중심가에서 긴급 체포돼 재판에 넘겨졌다. 당국은 그에게 탈세 혐의를 씌웠고, 법원은 4년 6개월형을 선고했다. 비아스나 사무실도 폐쇄됐다. 국제앰네스티는 비알리아츠키를 양심수로 선언했다.

2020년 대선에서 루카셴코 대통령이 6번째 연임에 성공하자 반정부 시위가 전국에서 열렸고, 비아스나는 정권의 무자비한 시위 진압을 추적하고 기록했다. 비알리아츠키는 "루카셴코 정권은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권력을 유지하고 사회에 공포를 조장해 부정선거에 반대하는 시위를 없애려 한다"고 비판했고, 이듬해 7월 다시 체포됐다. 현재 재판을 받지 않은 상태로 1년 넘게 구금돼 있다.

비알리아츠키는 독일 평화주의자ㆍ언론인 카를 폰 오시에츠키(1935년 수상), 미얀마 정치 지도자 아웅산 수치(1991년 수상), 중국 인권운동가 류샤오보(2010년 수상)에 이어 투옥 또는 구금 중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네 번째 인물이다. 노벨위원회는 "비알리아츠키는 인권과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에서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다"고 평하며 "비알리아츠키를 석방하라"고 요구했다.

메모리알, 러시아 정부의 인권침해·전쟁범죄 추적, 기록

‘러시아의 양심’으로 불리는 러시아 국제인권단체 ‘메모리알’은 1987년 설립됐다. 30년 넘게 러시아 정부의 인권침해 범죄 기록과 인권보호 운동을 벌이다 지난해 12월 러시아 법원의 해산 명령을 받고 폐쇄됐다. 설립에는 197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소련 물리학자 안드레이 사하로프가 참여했다.

메모리알은 활동 초기에 스탈린 정권이 저지른 인권 침해 범죄를 조사하고 기록했으며, 1991년 소련 연방 붕괴 이후 러시아에서 가장 큰 인권 단체로 성장했다. 1994~2009년 체첸 전쟁 당시 러시아군이 벌인 각종 전쟁범죄를 기록해 영구 보존하는 데 큰 공을 세웠다.

메모리알 활동가들은 러시아 정부로부터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2009년 메모리알 체첸 본부 대표 나탈리아 에스테미로바가 살해당하기도 했다. 러시아 정부는 메모리알을 폐쇄하기 위해 각종 시도를 했고, “옛 소련의 이미지를 해친다"는 명분을 내세워 지난해 법원에 해산 명령을 요구해 관철시켰다.

시민자유센터, 러시아군 전쟁범죄 1.9만건 문서로 기록

우크라이나 인권변호사 올렉산드라 마트비추크가 이끄는 CCL은 2007년 우크라이나의 인권·민주주의 증진을 위해 수도 키이우에 설립된 인권단체로, 러시아군이 올해 2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이후 저지른 전쟁범죄 1만9,000여 건을 수집하고 이를 문서로 기록했다. CCL이 남긴 증거는 이번 전쟁 이후 러시아의 전쟁범죄 책임을 묻는 근거자료로 쓰일 전망이다. CCL은 전쟁 전에는 우크라이나의 국제형사재판소(ICC) 가입을 추진하는 등 우크라이나의 완전한 민주화와 법치국가화를 위한 활동을 했다.

국제 인권기구들은 노벨위원회 결정을 일제히 환영했다. 케네스 로스 휴먼라이츠워치 전 사무총장은 트위터에서 "푸틴의 70번째 생일에 그가 폐쇄한 러시아 인권단체, 그의 전쟁범죄를 기록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인권단체, 그의 동맹 루카셴코가 투옥한 벨라루스 인권운동가에게 노벨평화상이 돌아갔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AP통신은 "푸틴에 대한 강한 질책"이라고 꼬집었다.

인류 평화에 이바지한 인물·단체에 주는 노벨평화상은 1901년 시작돼 올해 103번째로 수여된다. 그간 3명의 공동 수상 사례는 3번이었다. 2명 공동 수상은 31번, 단독 수상은 69번이었다.

김표향 기자
장수현 기자
김청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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