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푸틴 깃발 아래, 뭉치긴 뭉쳤는데"…'따로국밥' 우려되는 유럽정치공동체

입력
2022.10.09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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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에 반러시아 '정치공동체' 출범
마크롱 등이 주도...EU 탈퇴한 영국도 동참
강제성 없는 데다, 이해 관계 달라 실효성 의문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안보 위협을 받고 있는 유럽이 '유럽정치공동체(European Political Community∙EPC)'라는 신생 클럽을 띄웠다.

러시아에 대한 이해관계가 비슷한 국가들이 모여 유럽의 공동 이익을 실효적으로 보장하겠다는, 사실상의 반(反)러시아 공동체다. 그러나 유럽연합(EU)과 마찬가지로 구성원 입장이 똑같진 않은 데다, 앞으로 무엇을 논의할지, 어떻게 운영될지도 불분명해 실효성 의문도 제기된다.

"푸틴 자리는 없다" 마크롱이 주도한 공동체

EPC 첫 정상회의는 지난 6일(현지시간) 체코 프라하에서 열렸다. EPC는 지난 2월 러시아가 전쟁을 일으킨 것을 계기로 유럽이 정치·안보 사안에 보다 기민하게 대응해야 한다는 판단에 따라 출범했다.

이에 출범 일성은 '러시아 고립'이었다. EPC 출범을 주도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첫 회의 후 기자회견에서 "러시아를 규탄하고 우크라이나에 대한 지지를 표명한 44명(EU회원국 27개 포함) 유럽 지도자들의 단결을 매우 분명하게 보여줬다"고 했다. 호세프 보렐 EU 외교·안보정책 고위대표는 "러시아 없는 새로운 질서를 모색하는 것"이라고 했다.


'EU 견제' '비EU 포섭' 등 EPC 띄운 다양한 속내

EU가 있는데 EPC를 또 만든 배경엔, '무거운 조직'이 된 EU에 대한 회의론도 작용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EPC를 처음 제안하는 연설에서 "통합 수준을 감안할 때 EU가 유럽 대륙의 목소리를 내는 유일한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했다. 유로뉴스는 "유럽평의회, 유럽안보협력기구 등이 있지만, 러시아 통제엔 큰 효과가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상설기구'로서의 EU의 지나친 영향력 확대를 견제하기 위한 공동체란 시각도 있다.

유럽 외연 확장도 중요한 목표였다. EPC 회의엔 EU 합류를 희망하는 우크라이나, 조지아, 몰도바 등이 참석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 중재자를 자처하는 튀르키예도 자리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6일 화상으로 회의에 참석해 "러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반(反)유럽적인 국가"라며 "러시아 탱크가 바르샤바(폴란드), 프라하(체코)까지 진격하지 않도록 꼭 승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브렉시트' 영국 참여 '눈길'... EPC 실효성 '갸우뚱'

각국 정치적 계산도 작용했다. 2020년 브렉시트 후 EU와 거리를 뒀던 영국도 EPC엔 참여했다. 로이터는 "리즈 트러스 영국 총리에게 EPC는 유럽과 가까워지고, 국내 재정적∙정치적 위기에 쏠린 시선을 돌릴 기회"라고 말했다. 반면 마크롱 대통령이 EPC 출범을 제안한 건, 국제사회 영향력 확대를 노린 것이란 시각이 많다.

다만 EPC 회의론도 상당하다. 별도 성명, 결의안으로 구성원을 구속하지 않는 '느슨한 조직'이기 때문에 실효성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의장국 체코도 초청장에서 EPC를 "지도자들이 평등하게 정치적 조정을 하는 플랫폼"이라고 표현했다. 구성원, 의제 등도 불투명하다. EU 회원국을 그대로 옮겨놓은 데다, 구성원이 더 많아진 만큼 내부 의견 조정이 더 어려울 것이란 전망도 많다. '대화만 하고 끝나는' 회의가 될 수 있단 뜻이다.

베를린 신은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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