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장독이 예술... 보기만 해도 '붉은 눈물' 쓰촨의 매운맛

입력
2022.10.08 10:00
<101> 쓰촨 ①센스장유(先市醬油)와 야오바고진(堯壩古鎮)

쓰촨성은 문화권과 지리가 꽤나 복잡하다. 동서남북 모두 개성 강한 지역이다. 수도인 청두와 북부는 삼국시대 촉나라, 서부는 티베트 문화가 가득하다. 남부는 구이저우와 윈난, 동부는 충칭과 경계하고 있다. 18곳의 지급시와 3곳의 자치주를 포괄하고 있다. 지급시를 기준으로 동남부의 루저우와 네이장, 동부의 광안, 성도인 청두와 더양을 지나 북부의 난충과 광위안, 성을 넘어 한중까지 발품 기행을 떠난다. 모두 6편으로 나눈다.


명주의 고향 루저우 "상류는 술 빚고, 하류는 간장 빚네"

4215번 국도는 구이저우성 쭌이와 쓰촨 청두를 잇는다. 쓰촨 동남부 루저우를 지난다. 윈난에서 발원해 구이저우를 남북으로 흐르는 적수하(赤水河)가 루저우에 이르러 장강과 합류한다. 장강을 품은 루저우 일대는 수많은 명주의 고향이다. 누구나 10대 명주에 꼽는 루저우라오쟈오(瀘州老窖), 랑주(郎酒)와 우량예(五糧液)의 탄생지다. 장강 지류인 적수하는 애주가가 추앙하는 국주(國酒) 마오타이(茅台)를 증류한다. 톨게이트를 지나 적수하 강변의 센스(先市) 진을 찾아간다. 적수하가 빚은 또 하나의 명품을 만나러 간다.

지방도로를 달려 10여 분만에 센스장유(先市醬油)에 도착한다. 전통 기법으로 만드는 간장으로 유명하다. 명나라 말기부터 제조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강물과 미생물이 콩을 발효했다. 18세기 청나라 건륭제 시대 소금 운송이 활황을 맞이하자 상인과 인부가 운집했다. 간장 공장도 성황이었다.

구전에 따르면 선박 노동자가 작업할 때 외치는 노래가 있었다. ‘적수하가 예로부터 변함없이 흐르네. 상류는 술을 빚고, 하류는 간장을 빚네. 힘든 노동에 근심 많아도 다행히 술과 간장은 부족하지 않네’. 술과 간장은 필수품이었던 셈이다. 대문에 조화오미(調和五味), 구복만가(口福萬家)라 적혀 있다. ‘여러 맛과 잘 어울리며, 맛을 보면 집마다 복이 온다’고 한다.


강변의 양지바른 땅에 줄을 선 항아리가 장관이다. 봄여름가을겨울 변함없이 바람과 햇볕, 비와 눈을 맞는다. 자연의 자양분을 흥건하게 받는다. 흐리고 비가 오는 날씨에는 대나무 뚜껑으로 가린다. 화창한 날에는 삿갓 벗은 모습으로 햇살을 향해 몸을 연다. 최소한 3년 이상 숙성해야 간장 맛이 보장된다. 오래 버틸수록 품격이 높아진다. 향이 진하고 맛이 개운하며 짜지도 달지도 않다. 뚜껑을 여니 투명한 빛깔의 간장이 정체를 드러낸다. 곧바로 코끝에 향기가 진동한다. 콩이 선사한 소중한 맛이다. 적수하가 낳은 건강한 선물이다.


청나라 광서제 시대에 이르러 간장 수요가 늘어나자 퇴임한 관리 원영빈이 강한원(江漢源)을 창업했다. 누룩 제조와 발효 과정에서 기후와 온도, 습도를 관리했다. 품질이 향상돼 널리 알려졌다. 민국 시대에 다른 공장과 합작해 동인합호(同仁合號)를 세웠다. 600여 개의 항아리를 보유한 공장으로 성장해 지금에 이르렀다.

당시 상호를 적은 저택이 있다. 300년의 간장 제조 전통을 자랑하는 지방이다. 130년 역사의 공장이 만든 천연의 맛과 향이 강물에 두둥실 떠다니는 느낌이다. 1956년 센스장유로 개명했고 국영으로 운영하다가 2000년대에 이르러 민영 기업이 됐다. 민간이 운영하면서 제품 개발이나 디자인도 신경을 많이 쓴다. 전시 판매장도 깔끔하다.


3년을 숙성한 간장 310㎖가 50위안(약 8,500원)이다. 날씬한 병에 담고 운반하기 좋게 포장도 단단하다. 종이로 감싸고 꼼꼼하게 묶어서 가방에 넣어도 깨질 염려가 없다. 6년을 숙성한 간장은 210㎖ 병에 담아 80위안이다. 맛을 볼 수도 있다. 숙성이 오래될수록 훨씬 부드럽게 목으로 넘어간다. 하나도 짜지 않고 음료수를 마시는 듯 향긋하다.

간장 원액은 410㎖짜리를 20위안에 판다. 발효한 콩에 향신료를 섞은 두반(豆瓣)은 400g에 40위안이다. 값도 저렴하고 맛도 좋아 동행한 이들이 많이 샀다. 나중에 들어보니 쌀밥에 비비고 만두에 찍어 먹고 모두 꿀맛이라 한다. 횟집에 가서 고추냉이에 섞으니 ‘일본 간장 저리 가라’는 맛이었다는 후일담도 있다.

쓰촨의 매운맛, 먹거리로 활기 넘치는 야오바고진


역사학자이자 작가인 위단이 ‘살아있는 고진’이라 극찬한 마을이 있다. 센스에서 30분 거리다. 쓰촨 남부의 풍토가 낳은 먹거리로 활기가 넘치는 야오바고진(堯壩古鎮)이다. 입구에 아담한 석패방 하나가 있다. 이끼가 덮인 채 좁은 통로에 자리를 잡고 있다. 청나라 가경제 시대 1810년에 무진사(武進士)에 오른 이약용을 기념해 건축했다. 오지에서 진사를 배출했으니 자랑할만한 인물이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골목이 이어진다. 풍성한 양념으로 유명한 마을이라 약 1㎞ 거리에 가게가 줄지어 있다.

크지 않은 마을이라 먼저 숙소에 들렀다. 계단이 많아 약간 가파른 객잔이다. 대문에서 보니 일미향(一味香) 가게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지붕을 가린 기와는 자그마한 크기로 촘촘하게 쌓였는데 얼핏 보면 눈이 내린 듯 하얗다. 골목 바닥의 석판과 함께 기와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다. 노랗고 빨간 세로 현수막에는 갖가지 양념과 먹거리 이름을 적어놓았다. 이름을 따라 냄새를 맡아가며 둘러본다.

쓰촨을 떠올리면 누구나 맵다는 생각부터 한다. 먹어봐야 아는데 보기만 해도 ‘붉은 눈물’이 나기도 한다. 국물이 흥건한 콩 발효 양념인 수이더우츠(水豆豉)가 눈길을 끈다. 두반장과 비슷한데 물기가 훨씬 많다. 빨간 고추보다 더 새빨갛게 만들어 보기만 해도 매워 보인다. 주로 쓰촨, 구이저우와 후난 일대에서 만날 수 있다. 콩을 익혀 발효한 식품이다. 생강과 소금으로 맛을 가미하고 쓰촨 고추를 넣는다. 밥에 비벼먹어도 좋고 요리할 때 입맛에 맞게 넣어도 된다. 간장처럼 자연으로부터 얻는 힘이다.


약간 검붉은 양념이 보인다. 두부가 둥둥 떠다니는 훙더우푸(紅豆腐)다. 입안이 얼얼할 정도로 매운 쓰촨 특유의 맛을 내는 마라(麻辣)가 섞였다. 가게 이름이 런야오포(任幺婆)다. 런씨 집안의 아주머니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는데 야오(幺)는 고진의 야오와 발음이 같지만 막내를 호칭하는 말이기도 하다. 바로 옆에 큰 언니라는 다(大)를 쓴 런다포(任大婆)가 있기 때문인 듯하다. 맏언니와 막내도 손맛이 다를 터다. 상표 등록까지 했다. 둥근 플라스틱 병에 담은 뤄보간(萝卜干)으로 유명하다. 양념한 무말랭이인데 쓰촨의 맛과 아주머니 손길이 만든 유명세다. 밑반찬으로 제격인지 쌀밥 한 그릇에 한 접시로 거뜬하다고 한다.


가게마다 번호가 있는지 33호라 크게 써놓은 왕치메이(王七妹)가 보인다. 왕씨 집안의 일곱째 아주머니 가게다. 가게마다 이름이 같더라도 맛은 조금씩 다를 듯하다. 단골은 같은 집만 간다. 먹고 싶은 양념이 아니라 가게 이름을 보고 산다. 바로 옆에 좌판을 연 할머니가 있다. 광주리에 고구마와 줄기, 뿌리 식물인 석곡(石斛)을 판다. 손자는 등에 바짝 붙어 쿨쿨 잠을 자고 있다. 보채기 시작하니 일어나 걸음을 옮기며 달랜다. 아들이나 며느리가 캐서 손자까지 맡기고 팔라고 한 듯하다.

음력 섣달에 소금에 절이고 서늘한 바람에 말린 고기인 라러우(腊肉)가 보인다. 춥지 않은 남방에서 흔하게 만난다. 돼지나 양, 소는 물론 닭이나 오리와 생선도 말린다. 염장을 많이 하지 않아도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 자연이 만들어낸 최적화된 먹거리 재료다. 물론 인간의 지혜다. 절편처럼 얇게 썰어 아무 양념이나 찍어 먹으면 술안주로 좋다. 꼬들꼬들한 육질이라 씹는 맛이 제법이다. 채소와 버섯을 넣고 볶아도 금상첨화다. 남방 어디를 가더라도 식당마다 라러우 요리가 하나쯤은 있다.

마을 곳곳에 면발이 주렁주렁 걸렸다. 색깔로 봐서 밀가루로 만든 면이 아니다. 훙사오펀(紅苕粉)이다. 고진 부근에서 생산되는 고구마나 그 줄기를 가루로 만들어 뽑아낸다. 탸오(苕)라 발음하면 완두나 능소화를 지칭하는데 쓰촨에서는 고구마를 말한다. 쫄깃쫄깃한 당면과 비슷하다. 아쉽게도 면발만 잔뜩 구경하고 먹어보질 못했다.

고구마 줄기는 데쳐 먹기도 하고 식당에서도 인기 있는 요리다. 고구마가 정말 많이 생산되는 모양이다. 지역 특산으로 고구마로 만든 사오쓰탕(苕絲糖)도 제법 많다. 채를 썰어 살짝 튀긴 후 땅콩, 깨와 함께 엿기름으로 강정처럼 만든다.


기름 먹인 종이와 대나무로 만든 우산을 파는 유지산포(油紙傘鋪)가 있다. 이끼가 듬성듬성한 계단을 따라 들어서니 천정과 벽에 잔뜩 걸렸다. 치파오 입은 여인이 비 내리는 골목을 걸어가는 영화의 한 장면이 생각난다. 낭만이 풀풀 넘치는 도구다.

고진에서 우산을 만든 역사가 400년이 넘는다. 성황일 때는 제작하는 곳이 100군데도 넘었다. 직접 손으로 만들기에 공정이 길어 지금은 거의 사라졌다. 무형문화재로 보호하고 있어 명맥은 남았다. 하나에 10만 원도 넘는다. 소품으로 쓰면 모를까 선뜻 사긴 어렵다. 바깥 골목에 다양한 빛깔과 무늬를 새긴 유지산 10여 개가 걸려 있다. 손잡이를 잡고 인증 사진을 찍으라는 배려다. 볼수록 탐이 나니 분명 상술이다.


11세기 북송 시대에 형성된 마을이다. 구이저우와 쓰촨을 이어주는 통로이자 군사 요새였다. 차와 소금을 운송하는 차염고도(茶鹽古道) 중심지이기도 했다. 고대에는 소수민족인 야오족(瑤族)이 거주하던 땅이었다. 당나라 이후 한족이 들어서자 야오족은 남쪽으로 이주했다. 한족 신화에 등장하는 고대 제왕인 요순(堯舜)을 빌려 이름을 지었다.

중앙에 자운사(慈雲寺)가 있다. 명나라 만력제 시대에 처음 건축될 때 동악묘(東嶽廟)라 불렀다. 태산을 지키는 신 동악대제를 봉공했다. 계단을 오르는 주민 뒤로 포대화상(布袋和尚)이 화사하게 웃고 있다. 지금은 도교와 불교가 혼합된 채 마을을 지키고 있다.


패방의 주인공 이약용이 건축한 대홍미점(大鴻米店)이 있다. 구이저우와 쓰촨을 무대로 하는 미곡 집산지였다. 재물을 관장하는 신 관우가 불쑥 등장한다. 이곳에서 영화 ‘대홍미점’이 촬영됐다. 영화와 드라마의 대부가 된 황젠중이 1995년에 촬영했다. 국가 심사기관으로부터 일부 장면을 삭제하라는 요구가 있었다. 고집 세고 바쁜 감독 때문에 8년이 지난 후에야 상영됐다.

인기 소설가인 쑤퉁의 ‘미(米)’를 개작했다. 원래 소설 배경이 강남의 쑤저우였는데 주제를 더 잘 드러내기 위해 촬영지를 변경했다. 주인의 두 딸과 농민 출신의 점원, 지주가 등장하며 적나라한 복수와 애증을 영상으로 잘 담았다는 평가다. 최근 인터넷에 무삭제 버전이 공개돼 다시 알려지게 됐다.

골목을 돌아다니다가 찻집에 앉는다. 개완차(開碗茶) 한 잔에 10위안이다. 녹차나 홍차가 아니다. 덮개 있는 찻잔에 마신다는 말이다. 어떤 차를 넣어도 된다. 물을 붓고 뚜껑을 열어 마신다. 물은 무한대로 공급한다. 차 우리는 시간을 점점 길게 해 적당한 입맛을 찾으면 된다. 차 한잔하며 잡담하고 지나가는 사람 구경에 시간 가는 줄 모른다. 서서히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홍등이 차례차례 켜진다. 골목도 조명을 받아 양념 빛깔을 닮아 붉게 화장을 한다.


객잔은 전통 가옥을 개조했다. 방이 20칸이나 된다. 청나라 가경제 시대에 처음 건축했으니 200년이 넘었다. 집을 고치긴 했어도 연륜을 바꿀 수는 없다. 3층의 목조 건물이 내뿜는 분위기가 고풍스럽다. 방도 넓은 편이다. 식당은 좌석이 260개다. 현수막에 자주 보이던 요리인 홍탕양러우(紅湯羊肉)가 생각났다. 쓰촨에 왔으면 맵게 배를 채워야 당연하다. 1근에 85위안이다.

골목에 나가 동네에서 빚은 술을 샀다. 얼얼한 국물에 싱싱한 양고기를 쏟아 넣는다. 양고기 먼저 먹고 국물에 살짝 데친 채소를 투하한다. 입맛 따라 적절한 때 끄집어낸다. 젓가락 부딪히고 술 붓는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홍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홍탕인지 홍등인지 구별이 어렵다. 매운맛을 대표하는 쓰촨의 밤이 붉게 빛나고 있다.

최종명 중국문화여행 작가 pine@youyu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