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분 남짓한 장대한 마지막 곡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 연주가 끝나자 마침내 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얼굴이 훤히 드러났다. 온몸을 던진 연주로 땀에 흠뻑 젖은 까닭에 눈을 가릴 정도의 긴 앞머리가 자연스럽게 옆으로 넘겨졌기 때문이다. 폭발적 에너지로 대곡을 마무리한 조성진은 백스테이지로 통하는 문 뒤에서 생수로 목부터 축인 후 무대인사에 나섰다.
3일 성남아트센터에서 열린 '조성진 피아노 리사이틀'은 조성진에게 따라붙곤 하는 '섬세한 기교와 뛰어난 표현력'이라는 수식어에 걸맞은 무대였다. 독주회로는 지난해 9월 쇼팽 앨범 발매 기념 투어 이후 1년 만의 국내 무대인 이번 공연의 주제는 '변주곡'이었다. 조성진은 매 변주마다 현란한 기교를 바탕으로 새로운 캐릭터를 입혔다. 헨델의 건반 모음곡 5번 E장조(HWV 430)에 이어 흔히 '헨델 변주곡'이라 불리는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 브람스와 관계가 깊은 작곡가 슈만의 '3개의 환상 소곡집'과 '교향적 연습곡'으로 짠 프로그램은 하나의 이야기처럼 유기적으로 이어졌고, 성숙한 해석도 돋보였다.
조성진은 가벼운 목례와 함께 등장해 피아노 앞에 앉자마자 바로 첫 곡인 헨델의 건반 모음곡 5번 연주를 시작했다. 페달을 전혀 사용하지 않은 채 손가락만으로 다채로운 음의 강약과 음색을 구현해내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뒤이어 브람스의 '헨델 주제에 의한 변주곡과 푸가'를 속도감 있게 연주하며 셈여림과 음색의 낙차 큰 변주로 객석을 홀렸다.
기술이나 표현 면에서 모두 난도가 높은 마지막 곡 슈만의 '교향적 연습곡'에 대해서는 피아노 한 대로 오케스트라 같은 풍성한 음색을 빚어냈다는 평이 많았다. 이날 연주회에 참석한 허명현 음악 칼럼니스트는 "조성진이 서로 다른 차원에 놓인 듯 보이는 작품 속 성부 간의 관계를 잘 설정해 줘 오케스트라 같은 입체적 울림이 느껴졌다"며 "각 변주와 변주 사이의 이음매마저 신경 써서 잘 표현했다"고 평했다. 이준형 음악 칼럼니스트는 "조용하다가도 격렬해지며 큰 대조를 이루는 부분이 많은 슈만의 피아노곡은 자칫 어수선하게 들릴 수 있는데 전체적인 표현의 구성력이 좋았다"며 "그간 봐 왔던 독주회 중 가장 좋은 컨디션의 공연으로 느껴졌다"고 말했다.
이날 독주회는 공연을 불과 열흘 앞둔 지난달 23일 일정이 공개됐지만 티켓 오픈 1분도 채 안 돼 1,100석이 매진됐다. 조성진의 충성도 높은 팬이 많았던 이날 공연은 객석의 집중도도 눈에 띄게 높았다. 조성진은 일곱 차례 무대인사를 이어가며 헨델의 '사라방드'와 쇼팽의 스케르초 2번을 앙코르로 선사했다. 그는 마지막 앙코르 후 터진 객석의 뜨거운 환호성에 피아노 앞에까지 나와 깍듯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더 이상의 앙코르는 없다는 듯 손을 흔들며 무대를 떠났다.
조성진은 7일 부산 독주회에 이어 11일 대구, 12일 대전, 13~15일 서울에서 각각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와의 협연으로 국내 일정을 이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