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떼인 80세 부추농장 노동자가 '검찰'서 임금 받게 된 사연은

입력
2022.10.04 0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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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청에 진정했지만... 임금채권 시효 지나
구제 어려운데...검찰 '체불 전문 조정팀' 나서
임금 계산법, 처벌 시효 등 전문성 바탕 설득
농장주, 조정 받아들여 체불임금 전액 지급
대검, 체불 전문 조정팀 전국청에 설치 지시

2017년 5월부터 1년 8개월 동안 부추 농장에서 일한 A씨는 퇴직 후 한참 뒤에야 임금 980만 원을 받지 못한 사실을 알게 됐다. 70대 중반에 980만 원은 적은 돈이 아니었다. 당장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아 추가 수입도 기대하기 어려운 처지였다. A씨는 결국 80세를 목전에 둔 지난해 12월 농장주를 상대로 "체불 임금을 달라"며 고용노동청에 진정을 제기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임금채권 시효인 3년이 지나 '임금 받을 권리'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농장주도 이를 알고 '버티기'에 들어갔다. 다행히 농장주의 근로기준법 위반 공소시효(5년)는 살아 있어 고용노동청은 농장주를 울산지검에 송치했다.

울산지검은 형사조정위원회 산하 '체불사건 전문형사조정팀'에서 사건을 다루게 했다. 농장주를 당장 처벌할 수도 있었지만, A씨가 임금을 받는 게 우선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인노무사 등 전문가로 구성된 체불사건 형사조정팀이 미지급 임금 산출 근거와 공소시효가 살아 있다는 점을 농장주에게 상세히 설명하며 설득하자, 농장주는 A씨에게 체불 임금 전액을 지불했다. 민사적으로는 구제 가능성이 없던 임금 체불 피해가 검찰 단계에서 조정을 통해 해결된 것이다.

체불사건 전문형사조정팀, 전국 검찰청에 설치

대검찰청은 3일 울산지검 사례를 토대로 전국 검찰청 형사조정위원회에 체불사건 전문형사조정팀을 설치해 운영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동안 임금체불같이 피해 구제가 필요한 사건은 위원회에서 조정을 거치도록 해, 법원으로 넘기기 전 마지막 조정 기회를 제공해왔다. 다만 여러 직종의 종사자들이 위원으로 임명되다 보니, 근로시간 산정 등 복잡한 임금체불 사안을 전문적으로 판단할 능력은 부족했다.

대검은 이에 임금체불 사건은 노무사와 변호사 등으로 구성된 '전문 조정팀'이 나서도록 했다. 체불사건 형사조정팀은 직접 사건을 검토해 합리적인 조정액과 지급 방법을 제시하는 등 피해 구제에 방점을 찍는다. 임금 체불 사건이 많은 울산지검에선 지난해 12월부터 체불사건 형사조정팀을 운영한 뒤, A씨 사례처럼 조정이 성립한 경우가 33.3%에서 45.5%로 늘었다.

검찰 관계자는 "임금채권은 모든 채권보다 앞서 1순위로 변제돼야 하지만, 사업주들은 심각성을 인지하지 못하고 검찰 수사가 시작돼도 체불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체불 전문 형사조정 단계에서 노동자 상황이나 형사절차 정보를 제공해 조정을 통한 임금 지급이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악덕 사업주' 강제수사가 원칙...은닉재산도 파악

대검은 지급 능력이 있는데도 상습적으로 고액의 임금을 체불하는 '악덕 사업주'를 상대로는 구속수사를 원칙으로 하고, 은닉재산 파악에도 수사력을 모을 계획이다. 악덕 사업주들 중에는 강제수사 이후 체불 임금을 갚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최근 의정부지검에선 근로자 11명에 대해 1억2,000만 원의 임금을 체불한 마스크 제조 공장주가 구속 4일 만에 체불 임금 전액을 지급했다. 해당 공장주는 △회사 자금을 채무 변제금으로 사용하고 △잔액 3억 원 계좌를 보여주며 임금 체불 신고 취소를 종용하는 등 고의로 임금을 주지 않은 점이 검찰 수사로 드러났다.

대검은 "1억 원 이상 고액 임금 체불 사건은 매년 1,500여 건씩 꾸준히 발생하는데도 오히려 구속 인원은 줄었다"며 "신속한 강제수사를 통해 체불 임금 청산 가능성을 높일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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