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평범한 디지털 시계처럼 보이지만 이 기기는 좀 특별하다. 이용자가 잠자리에 들면, 따로 '시작 버튼'을 누르지 않아도 알아서 수면 상태 측정을 시작한다. 스마트워치처럼 계속 차고 있을 필요가 없고 카메라나 마이크도 달리지 않았는데, 밤새 주인의 머리맡에서 그의 수면 단계를 지켜보고 기록한다. 인공지능(AI) 스피커나 스마트조명과 함께일 때 이 기기의 힘은 더 강력해진다. 이용자가 얕은 수면 중이라고 판단되면, 그가 좋아하는 노래나 은은한 빛으로 그의 자연스런 기상을 도와준다. 이 똑똑한 기기는 아마존이 28일(현지시간) 공개한 수면 추적기 '헤일로 라이즈'(Halo Rise)다.
미국 스마트홈 1위 업체 아마존이 온라인으로 연례 신제품 공개행사를 열어 헤일로 라이즈를 포함한 AI 기반의 스마트홈 기기들을 대거 선보였다. 쓰기 기능을 새롭게 추가한 전자책 단말기처럼 원래 있던 제품에 혁신을 더한 것부터, 헤일로 라이즈처럼 기존에 없던 제품까지 총망라했다. 아마존이 더 진화한 제품으로 구글, 애플 등 경쟁사들에 추격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날 가장 눈길을 끈 건 새로 내놓은 헤일로 라이즈다. 아마존은 이 수면 추적기에 대해 "비접촉식 저에너지 감지 기술과 기계학습으로 구동된다"고 설명했다. 민감한 센서(감지기)를 온몸에 장착한 헤일로 라이즈는 이용자의 움직임과 호흡, 주변 밝기와 온도, 습도를 측정할 수 있다고 한다. 이를 통해 헤일로 라이즈는 이용자가 잠에 들기 시작했다고 판단하는 순간부터 수면 상태를 측정한다. 이용자가 침대에 누웠더라도 독서 중이라면 추적하지 않는다. 이용자 옆에 누워 있는 사람과도 혼동하지 않는다고 아마존은 자신했다.
스마트TV, 전자책 단말기, AI 스피커, 가정용 AI 카메라 등 기존 제품들엔 신기능을 넣어 가치를 끌어올렸다. 지난해 처음 선보인 가정용 로봇 '아스트로'(Astro)는 신기하긴 한데, 용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아마존은 아스트로가 가정 내 보안관 역할을 더 충실히 수행할 수 있도록 개선했다. 이용자가 집에 없을 때 반려동물 움직임을 체크하고, 짧은 영상을 찍어 이용자에게 보내주기도 하며, 문이나 창문이 열려 있으면 확인이 필요하다는 알림을 이용자에게 전송한다.
전자책 단말기 킨들에는 '쓰기' 기능을 새롭게 넣었다. 원래 읽기만 가능한 단말기였으나, 흑백 태블릿 형태로 바뀐 셈이다. '킨들 스크라이브'(Kindle Scribe)라고 이름 붙은 신제품은 전자 펜슬이 함께 제공된다. 이용자는 이제 전자책을 읽으면서 강조 표시나 메모도 할 수 있다. 아울러 스마트 스피커 '에코 닷'(Echo Dot)에는 와이파이 도달 범위를 확장시켜주는 기능이 내장됐다. 이런 형태 제품은 구글이 먼저 선보이긴 했으나, 아마존은 에코 닷의 가격을 구글 제품 대비 3분의 1 수준으로 확 낮춰 경쟁력을 살렸다.
흔히 아마존은 '유통 공룡'으로 불리지만 스마트홈의 선구자이자, 절대 강자이기도 하다. 2014년 빅테크(주요 기술 기업) 중 처음으로 AI 서비스 알렉사 기반의 스피커를 내놓은 이래, "모든 가정을 '아마존 집'으로 만들겠다"는 포부를 숨기지 않으며 제품군을 부지런히 늘렸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아마존 제품은 지난해 미국 내에서 판매된 스마트홈 기기의 11.5%를 차지했다. 2위는 구글(6.5%), 3위는 삼성전자(5.8%)였다.
쌓인 데이터를 학습하며 진화하는 AI의 특성상, 가장 많은 데이터를 보유한 아마존은 이 시장을 계속 장악할 가능성이 크다. 지난 7월엔 로봇청소기 1위 업체 아이로봇 인수에 17억 달러(약 2조4,480억 원)를 베팅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마존이 가정 내에서 영향력을 키워갈수록 사생활 침해 우려도 커지고 있다. 아마존은 "스마트홈 기기를 통해 얻은 이용자 데이터는 제품 추천이나 광고에 사용되지 않으며, 판매되지도 않는다"고 주장하지만, 의구심은 여전하다. 이를 의식한 듯 아마존은 이날도 "센서나 마이크 등은 이용자가 원하지 않으면 끌 수도 있다"며 이용자 정보 보호를 유독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