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29일 박진 외교부 장관 해임건의안 처리를 예고한 가운데 국민의힘이 이를 저지하기 위한 막판 총력전을 벌였다. 김진표 국회의장을 찾아가 읍소하고, 민주당에 윽박지르며 반대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국회에서 거대 야당이 의석수를 앞세워 밀어붙이면 소수당인 여당으로선 도리가 없다. 결국 윤석열 대통령의 해임건의안 수용 여부에 따라 박 장관의 운명이 좌우될 것으로 전망된다.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8일 김 의장과 만나 다음 날 본회의에서 민주당이 발의한 박 장관 해임건의안을 상정하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민주당이 국민의힘과 의사일정을 협의하지 않았다는 절차상 하자를 이유로 들었다. 주 원내대표는 취재진과의 자리에서 "외교부 장관은 국익을 지키기 위해 전 세계 국가들과 교섭, 협상을 하는데 불신임 낙인을 찍으면 어떻게 대한민국을 대표할 수 있겠느냐"며 "해임건의안 통과는 국익을 해치는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박홍근 민주당 원내대표를 만나겠다"며 협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국민의힘 국제위원장을 맡고 있는 태영호 의원은 박 장관 해임건의안을 윤석열 정부에 대한 '발목꺾기 정치 공세'로 규정하며 가세했다. 태 의원은 국회 기자회견에서 "지금 대한민국은 북한의 7차 핵실험과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 일본의 강제징용 문제, 대만해협 위기 등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과 지뢰밭 속에서 해법을 찾아야 하는데, 이런 시기에 최고의 전문성을 지닌 폭발물 처리반 반장을 해고하는 것이 웬 말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은 앞서 27일 의원총회에서 박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소속 의원 전원(169명) 명의로 발의했다. 민주당은 최근 순방에서 발생한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과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 참배 무산, 한미 정상 '48초' 회동 등 문제를 '외교참사'로 규정하며 주무 장관인 박 장관에게 책임을 묻기로 했다.
이와 관련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이날 국회 교섭단체대표 연설에서 "총성 없는 전쟁인 외교에 연습은 없다. 오판 하나, 실언 하나로 국익은 훼손되고 막대한 비용이 발생한다. 제1당으로서 이번 외교참사의 책임을 분명하게 묻겠다"고 못 박았다. 민주당은 해임건의안을 여당 교섭단체대표 연설이 예정된 29일 본회의에서 처리할 방침이다.
해임건의안이 통과하려면 재적의원 과반의 동의가 필요하다. 민주당이 전체 의석의 절반이 훌쩍 넘는 169석을 확보하고 있어 별 무리가 없다. 국민의힘은 필리버스터(법안 처리 저지를 위한 합법적 의사 진행 방해)나 표결 불참 등 구체적 대응방안을 아직 정하지 않았다. 본회의 당일 의원총회에서 구체화할 예정이다.
다만, 해임건의안이 국회 문턱을 넘어도 임명권자인 윤 대통령이 무시하면 박 장관 해임은 불가능하다. 헌법에는 해임 건의 요건만 규정돼 있어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거부권을 행사하지 않아도 그냥 뭉개면 그만이다. 국회를 통과한 법률의 재의요구권과 다른 점이다.
이를 의식한 듯 진성준 민주당 원내수석부대표는 MBC 라디오에서 "역대 장관 해임건의안이 모두 6번 (국회에서) 통과됐는데 그중 5명이 자리에서 물러났다"며 "탄핵과 마찬가지로 발의와 의결요건이 엄격하게 규정된 해임건의안을 윤 대통령이 수용하지 않으면 더 큰 국민적 비난을 받게 될 것"이라고 압박했다. 민주당은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김재수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에 대한 해임건의안을 발의해 가결했으나, 박 대통령이 받아들이지 않아 무산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