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원·달러 환율이 13년 6개월 만에 1,430원을 넘어섰다. 하루 사이 20원 이상 급등한 결과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이어 영국·이탈리아에서 거시경제를 흔드는 악재가 잇따르자 '강달러'가 심화한 탓이다.
이날 환율은 전장보다 22원 높은 1,431.3원에 마감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9년 3월 16일(종가 1,440원) 이후 최고치다. 환율은 전장(1,409.3원)보다 10원 높은 1,419원에 개장해 단숨에 1,420원을 넘겼다. 이후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1,430원마저 뚫었다. 오후 들어선 1,435.4원까지 연고점을 높였다.
시장의 달러 수요를 줄이기 위해 한국은행·국민연금 통화스와프에 이어 정부가 해외 투자금을 국내로 되돌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지만, 환율을 방어하기엔 역부족이었다.
달러는 오히려 주요국 악재를 흡수하며 힘을 키웠다. 영국 정부가 70조 원 규모의 감세 정책을 발표하자 시장은 이를 인플레이션 심화 요소로 인식, 파운드화를 장중 1.03달러까지 밀어내렸다. 이탈리아에선 우파연합의 총선 승리가 확실시되자 '이탈렉시트'(Italexit·이탈리아의 탈유럽연합) 위기가 고조됐다.
이에 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달러인덱스는 이날 20년 4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114.412)으로 치솟았다. 중국 인민은행은 기준 환율을 달러당 7위안으로 고시하며 외환위험준비금 비율을 0%에서 20%로 대폭 상향했다.
거듭되는 환율 쇼크에 투심은 바닥을 쳤다. 개인이 2,400억 원 물량을 내던진 코스피는 장중 연저점을 경신(2,215.36)하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 때인 2020년 7월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종가는 2,220.94(-3%). 삼성전자, SK하이닉스, 카카오 형제들(카카오뱅크·페이·게임즈)이 연저점을 갈아 치웠다. 무려 5%나 떨어진 코스닥은 2년 3개월 만에 700선이 깨졌다.
시장은 주중 제롬 파월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과 크리스틴 라가르드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의 '입'에 주목하며 긴축 경계심을 이어 갈 것으로 보인다. 파월 의장과 라가르드 총재는 한국 시간으로 27일 오후 8시 30분 프랑스 중앙은행이 주최하는 토론회에 참석한다. 미국 연방준비은행 총재들의 연설도 줄줄이 예정돼 있다.
증권가에서는 암울한 전망이 잇달았다. 권아민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상승 속도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두 번째로 빠르다"며 연말 환율 상단을 1,490원으로 내다봤다. 코스피가 내년 2,000선을 밑돌 것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허재환 유진투자증권 연구원은 "내년 기업실적이 올해와 유사하다면 코스피는 2,130까지, 5~10% 감소하는 완만한 침체에서는 1,920~2,020까지 밀릴 가능성이 있다"고 예상했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그러나 이날 국회 긴급현안 보고에서 "이론적으로 한미 통화스와프는 필요 없다"는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다만 "제롬 파월 의장 등 중앙은행 총재들과 통화스와프 관련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다음 달 빅스텝(기준금리 0.5%포인트 인상) 가능성에 대해 확답을 하지 않았으나, "5, 6%의 고물가가 오래가면 금리를 올릴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날 국채 3년물 금리는 빅스텝을 반영, 12년 11개월만에 4.5%(4.55%)를 돌파했다. 10년물(4.34%)과 금리 역전 폭은 사상 최대(0.21%포인트)로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