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장용 장르 따로 있다"고? 설 자리 좁아지는 로맨스·힐링극

입력
2022.09.29 07:56
올해 500만 관객 달성 영화들, 공통점은 화려한 액션
안방극장서는 주목 받는 로맨스·힐링극


티켓값이 비싸지니까 관객들이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 그리고 아닌 영화를 나누더라고요.

한 영화 홍보 관계자가 한 말이다. 멀티플렉스 극장의 2D 일반 영화 성인 기준 관람료는 주중 1만 4천 원, 주말 1만 5천 원이다. 다양한 작품을 마음껏 관람할 수 있는 OTT 구독료보다 비싼 가격에 많은 관객들이 스케일 큰 액션 영화가 아니라면 스크린에서 내려온 뒤 보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로맨스, 힐링극 등 잔잔한 작품의 설 자리가 점점 좁아지고 있는 걸까.

'범죄도시2' '한산: 용의 출현' '공조2: 인터내셔날'은 올해 500만 관객을 달성한 영화들이다. 이 작품들은 화려한 액션이 돋보인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범죄도시2'에서는 괴물 형사 마석도(마동석)의 범죄 소탕 작전이 그려졌다. '한산: 용의 출현'은 이순신(박해일) 장군과 조선 수군의 한산해전을, '공조2: 인터내셔날'은 형사들의 삼각 공조 수사를 담았다. 적에 맞서는 강력한 주인공들의 모습이 세 작품을 채웠다.

반면 짜릿한 액션이 주를 이루거나 큰 스케일을 자랑하는 작품이 아닌 경우 500만 돌파에 어려움을 겪었다. 제75회 칸 국제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세계적인 인정을 받았던 작품들의 관객 수조차 '범죄도시2' '한산: 용의 출현' '공조2: 인터내셔날'을 넘어서지 못했다. 송강호에게 남우주연상을 안긴 '브로커'는 126만 관객, 박찬욱이 감독상을 거머쥘 수 있도록 도운 '헤어질 결심'은 187만 관객을 기록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크지 않은 스케일의 영화가 극장가에서 뜨거운 반응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차별화된 포인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본지에 "많은 관객들이 블록버스터가 아닌 서사 중심으로 하는 이야기들, 장르가 휴먼 드라마·멜로인 작품들을 OTT로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티켓값이면 OTT에서는 더 다양한 콘텐츠를 볼 수 있는 상황인 만큼 충분한 차별성이 없다면 영화관으로 굳이 움직이지 않을 거다"라고 말했다.

물론 로맨스, 힐링극 등이 가진 힘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최근 안방극장에서는 tvN '우리들의 블루스', ENA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등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드라마들이 큰 사랑을 받았다. 정 대중문화평론가는 "드라마 쪽에서는 멜로 장르 시장이 여전히 존재한다. 동남아 시장이 좋은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쪽에서 장르물 대신 멜로극을 많이 만들어 달라는 요청이 나올 정도다. 많은 영화 인력이 드라마 쪽에서 활약하고 있는 현 상황을 생각해 본다면 이 시장에서 멜로 등의 장르들이 추구되지 않을까 싶다"고 했다.

영화관에서 블록버스터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고 있지만 로맨스, 힐링극이 설 자리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안방극장에서는 장르물보다 좋은 성적을 거두기도 했다. 다만 영화관에서도 이러한 작품들을 즐기고 싶었던 이들에게는 아쉬움을 남긴다.

정한별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