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발포로 9명 사망에도... 격렬해지는 이란 히잡 시위

입력
2022.09.22 21:00
수도 테헤란 비롯해 20개 도시에서 시위 
바이든  "용감한 여성과 시민들의 싸움"

이란에서 히잡을 쓰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에 체포된 20대 여성이 의문사한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가 걷잡을 수 없이 번지고 있다. 경찰의 유혈 진압으로 10대 소년을 포함해 9명이 숨지는 등 이란 전체가 요동치고 있다.

히잡은 이슬람 여성들이 머리와 상반신을 가리기 위해 쓰는 두건이다. 여성의 인권을 억압하는 구시대의 상징으로 전락했지만, 이란 정부는 최근 히잡 착용을 더 강하게 강제하고 있다.

21일(현지시간) 영국 BBC방송에 따르면 쿠르드계 마흐사 아미니(22)의 사망 사건을 규탄하는 시위가 수도 테헤란을 비롯 시라즈, 케르만샤, 하마단, 타브리즈 등 주요 20개 도시에서 벌어졌다. 시위는 날로 격해지고 있다. 각종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이란 사법부 건물 옆에서 오토바이를 불태우거나, “독재자에게 죽음을”이라고 소리치는 시위대들의 영상이 게재됐다. 여성들은 머리에 쓴 히잡을 벗어 불태우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Mahsa_Amini(마흐사 아미니)' 해시태그는 트위터에서 500만 번 이상 언급됐다.

이란 경찰은 실탄 발포로 대응했다. BBC방송은 지난 17일 시위가 시작된 이후 9명이 경찰 진압 때문에 숨졌다고 보도했다. 사망자 중엔 16세 소년도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란 북부 도시 라쉬에서 시위에 참가한 여성은 "경찰이 최루탄을 발사했으며, 나를 구석에 몰아넣고 때렸다"면서 "나를 매춘부라고 부르면서 몸을 팔러 나온 거냐고 조롱했다"고 고발했다.

국제사회는 이란 여성들을 지지하고 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21일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현재 이란의 용감한 시민들과 여성들이 그들의 기본권을 확보하기 위해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제임스 클레버리 영국 외무장관은 "이란 지도부는 국민들이 그들이 취한 방향에 불만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이란 정부는 그러나 강경하다. 예드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유엔총회 연설에서 캐나다 원주민 집단 학살과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탄압 등을 거론하며 "(인권 문제가) 전부가 아닌 한쪽에만 쏠리는 이중잣대가 적용되고 있다"며 불쾌감을 드러냈다.

김현우 기자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 Copyright © Hankookilb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