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방문 중인 최태원 SK 회장이 한국산 전기차 차별 논란을 불러온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통과에 감정적 대응 자제를 주문했다. 또 자국 우선주의 기조와 미중 갈등으로 전 세계 경제의 디커플링(탈동조화)이 심화하는 현상도 긍정ㆍ부정 효과가 모두 있다고 평가했다.
최 회장은 21일(현지시간) 3년 만에 워싱턴에서 개최된 SK 나이트 행사에 앞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서 ‘IRA 통과 후 한국이 뒤통수를 맞았다는 반응이 나온다’는 질문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감정적 대응”이라고 답했다. 그는 “이 법이 잘못됐다고 감정을 갖고 대하는 것보다는 이들이 이럴 수밖에 없었던 사정을 조금 더 이해하고 거기에서 나오는 이해를 바탕으로 한 해법을 찾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최 회장은 이어 “지금 당장 손익관계에서 (현대차가) 보조금을 못 탈 확률이 많아지면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현대차의 경쟁력이 너무 좋다”며 “이 문제에도 불구하고 (현대차가) 충분히 뚫고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응원한다”고 말했다.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보면 (IRA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다"라는 설명도 곁들였다. 북미에서 조립 생산된 전기차만 내년부터 최대 7,500달러(약 1,000만 원)의 세액 공제 혜택을 받게 되는 IRA 때문에 한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현대차 차별 논란이 일었다.
최 회장은 국내 대기업의 해외 투자 편중 논란도 해명했다. 그는 “(SK) 전체 투자 계획을 보면 2030년까지 250조 원 정도 되는데 해외 투자가 원래 50조 원, 환율이 올라 70조 원 정도 되고 나머지는 다 국내 투자”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내 투자가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해외 투자는 필수적으로 가야 되는 것”이라며 “이번에 발표한 대미 반도체 투자는 주로 연구개발(R&D)과 소프트웨어, 첨단 패키징 등 새로운 기술인데 이런 것은 한국에 없으니 여기에 투자해 내부화를 시켜야 (국내로 되돌아와) 투자가 더 들어갈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SK의 미중 갈등이나 디커플링 심화 대응 기조도 소개했다. 최 회장은 “디커플링 속도와 깊이, 어떤 부분이 강조되느냐에 따라 리스크가 더 클 수도, 기회가 더 클 수도 있다”고 전제했다.
또 “과거에는 전 세계가 하나의 시장이었고 지금은 디커플링 형태가 되며 시장이 쪼개지는 현상이 일어나 두 개의 시장이 되기도 했다”며 “두 개의 시장 중 하나를 버리겠느냐”라고 반문하기도 했다. “중국 수출이 25%를 차지하고 있는데 그것을 갑자기 버린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경제가 감당할 수 없는 얘기”라는 것이다.
다만 미국의 수출통제 영향 관련 질문에는 “(중국에 첨단) 장비가 못 들어가면 공장이 계속 노후화하고 업그레이드가 어려워진다”며 “노후화돼서 문제가 생긴다면 다른 곳에 투자를 하거나 공장을 짓거나 (해야 할 것)”이라고 답했다.
반도체 전망과 관련, “큰 흐름으로 전체를 보면 앞으로도 반도체 수요는 계속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전제를 갖고 (투자를 해야 한다)"며 “공급과 수요가 잘 안 맞아서 가격이 나빠지거나 하는 문제이지 반도체 수요는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에 계속 공급을 해야 한다”고 밝혔다.
최 회장은 또 “어떤 시나리오가 일어나더라도 최소한 생존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한 덕목”이라며 정부의 지원과 협업 필요성도 제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