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조치 피해'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 국가배상 소송 승소

입력
2022.09.19 17:00
대법, 지난달 '긴급조치 9호' 국가배상 책임 인정

박정희 정권 당시 긴급조치 9호로 불법체포 등의 피해를 입었던 고(故) 김윤수 전 국립현대미술관장이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받았다.

1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법 민사13부(재판장 강민구)는 김 전 관장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국가 측 항소를 기각하고, "1억4,000여만 원을 배상하라"는 1심 판결을 유지했다.

김 전 관장은 이화여대 미술대학 전임강사로 일하던 1975년 대학 후배였던 김지하 시인의 양심선언문을 소지·배포(긴급조치 9호 위반)하고, 같은 해 반정부 학생시위 주도자였던 당시 서울대생 장만철(영화감독 장선우)씨 등을 집에 숨겨준 혐의(범인 은닉)로 불법체포됐다. 이후 1심에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 항소심에서 선고유예 선고를 받았다.

김 전 관장은 2018년 11월 재심을 통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유족들은 김 전 관장이 사망한 이후 2019년 6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국가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재판부는 "유신헌법에 기초하더라도 명백히 위헌적 내용의 긴급조치 발령과 그에 따른 후속조치라는 일련의 공무집행 범위는 법질서 전체의 관점에서 위법하다"고 밝혔다. 또한 "긴급조치의 선포와 그에 따른 수사, 재판, 형 집행 등 일련의 국가작용에서 불법성의 핵심은 긴급조치 자체에 있다"고 판단했다. '긴급조치를 국가 통치행위로 보고, 수사·재판 과정에서 불법행위가 입증되지 않는 한 배상할 필요가 없다'는 당시 대법원 판례를 따르지 않은 판결로 주목을 받았다.

항소심 역시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다만 1심과 달리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긴급조치 9호 피해자에 대한 국가배상 책임을 인정하며 기존 판례를 변경하면서 이를 근거로 삼았다. 항소심 재판부는 "긴급조치 9호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정당성을 상실한 것"이라며 "대한민국은 국가배상의 책임을 부담한다"고 밝혔다.

문재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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