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석부터 부를게요. ㅇㅇㅇ 어르신!"
14일 오후 4시 20분. 서울 관악구 신한은행 신림동 지점 최영미 지점장이 객장 한쪽 대형 스크린 앞에 섰다. 영업이 끝난 시간, 한산해야 할 객장은 삼삼오오 모여 앉은 고령의 손님들로 만원이었다. 모두 '시니어 디지털 금융 교육' 수강생들이다.
신한은행은 올해 총 50회를 목표로 전국 노인복지관·주민센터에서 교육을 진행하고 있다. 21회차인 이날 교육은 지난해 12월 시니어 특화 지점으로 새 단장한 신림동 지점에서 열렸다.
신원시장과 맞닿아 있는 이곳은 전국 신한은행 지점 중 고령 고객이 가장 많은 곳이다. 눈에 띄는 특징은 바닥 유도선. 단순 입·출금은 녹색, 예·적금은 주황색, 대출·외환 등 기타업무는 파란색을 따라가도록 돼 있다. 현금자동인출기(ATM)는 큰 글씨와 쉬운 말로 바꿨다. 모든 디지털 기기 옆엔 항상 안내 직원이 서 있다.
모바일 뱅킹 교육도 일상적이다. 출석 체크를 마친 최 지점장은 "창구 직원들이 매번 알려드려도 깜빡하신다"며 수업이 어렵진 않을지 걱정했다. 이날 수강생들은 만 63세부터 86세까지 지점 단골 손님 19명이었다. 기자는 그 사이에서 함께 수업을 들었다.
10분 뒤 등장한 강사는 경쾌한 목소리와 큰 동작, 친근감을 유발하는 간헐적 반말로 이해하기 쉽게 반복 설명했다. 끊임없이 질문했는데, 여기저기서 답이 튀어나올 만큼 호응이 좋았다. 먼저 수강생 눈높이에 맞춘 이론 수업이 진행됐다.
"디지털은 뭐다? '안 만나'. 그럼 반대말 아날로그는? 그렇지 '만나'. 그럼 폰으로 돈을 보내는 건 '만나', '안 만나'? 그치 안 만나니까 디지털."
이어 교육의 목적을 설명했다. "디지털 왜 해야 할까요? 요즘은 사람을 안 써요. 점포도 없어져. 왜? 돈이 드니까. 대신에 그 돈을 베풀어. 폰으로 돈을 보내잖아요? 그럼 수수료를 안 내요." "편하니까" 이상의 솔직한 설명. 수강생 대부분은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이어진 실무 교육. 강사는 뱅킹 어플리케이션(앱) 사용법 전에 스마트폰 기본 기능을 알려줬다. "화면 아래에 모양 세 개가 있죠? 내 천(川), 동그라미, 그리고 화살표. '내 천'이 중요한데 과거의 흔적을 볼 수 있는 거야. 다른 사람이 보면 안 되겠죠? 그니까 지워야 해. 화면 아래 '모두 닫기'나 '지우기'를 누르면 돼요."
실제 뱅킹 앱과 똑같이 만들어진 교육용 웹페이지(url)에서 회원가입, 입출금통장 만들기, 이체하기를 해봤다. 교육용 url에 접속하는 큐알(QR)코드를 촬영하는 것부터 애를 먹었다. 화면 네모 칸 안에 QR코드를 맞춰 넣는 게 쉽지 않았다. 통장 개설 땐 한 수강생이 손을 들고 "아이디와 비밀번호의 차이"를 물었다.
가장 분주했던 건 이체하기 실습 시간. 강사의 가상계좌에 돈을 보내는 연습을 해봤다. 엉뚱한 데 보낼까 봐 여기저기서 도움을 요청하는 손들이 올라갔다. 마감을 끝낸 직원들이 수강생 옆에 붙었다. 강사가 이체에 성공한 수강생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자 수강생들 얼굴에 배시시 미소가 뱄다.
강사가 "마지막엔 반드시 '내 천'자를 이용해 뱅킹 앱 사용 흔적을 지워야 한다"고 강조하자 동시에 "아" 하는 탄성이 터졌다. "이 중요한 기능을 이제야 알았다"는 의미로 들렸다. 앞서 "흔적 지우기는 처음 알았다"고 고백하는 수강생이 꽤 있었다.
국민연금공단 사칭, 모르는 번호로 온 청첩장 링크,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며 다른 개인정보를 물어보는 전화 등 최근 고령층이 잘 당하는 사기 유형을 정리한 뒤 수업이 마무리됐다. 수강생들은 "핵심만 얘기해 줘서 알아듣기 쉬웠다"고 만족해했다. "또 듣고 싶다"며 다음 교육 일정을 묻는 사람도 있었다.
"배워야지, 우리도 배워야 해." 수강생 고모(71)씨는 자신은 진즉부터 모바일 뱅킹을 이용해 왔다며, 평소 친구들에게도 사용법을 알려주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가 들면 묻고 또 묻는다"며 "쉬운 건 기계를 이용해야 다른 사람의 대기시간도 준다"고 말했다.
고씨는 1994년 개점부터 신림동 지점을 이용한 진성 고객이다. 은행 지점이 없어지는 게 불편하지 않냐고 묻자 곧장 "아쉽지"라고 답했다. 이어 "그래도 어떡해 따라가야지"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