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이 "북한이 미러, 미중 관계가 나쁜 것을 역이용해 그 두 나라로부터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으려고 하는 것을 우리가 막아야 된다는 점에서 중국, 러시아를 끌어들여 6자 회담을 다시 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 전 장관은 14일 TBS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서 "(북한이) 미국과 사이가 나빠진 중국과 러시아 편에 붙어서 사실상 핵 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수순을 밟으려는 것 같다"며 이같이 말했다.
정 전 장관은 김대중·노무현 정부 당시 통일부 장관을, 문재인 정부에서는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을 지낸 대북 전문가다.
정 전 장관의 주장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8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대내외에 "핵 포기 불가" 방침과 함께 내놓은 '핵 무력 법제화' 대응책을 설명하면서 나왔다. 여기에는 유사 시 김정은을 중심으로 한 지휘부가 공격을 받을 경우 자동으로 핵 타격을 가한다는 '자동 핵 타격' 외에 핵무기 사용 조건으로 5가지 경우를 법령에 적시했다.
특히 핵이나 기타 대량살상무기(WMD)에 의한 대북 공격, 지도부에 대한 적대세력의 핵 또는 비핵 공격, 주요 전략 대상에 대한 치명적 군사적 공격 등인데 여기서 이런 공격이 '감행됐거나 임박했다고 판단되는 경우'라고 명시했다. 즉 실제 공격이 일어나지 않았더라도 단지 북한 스스로 곧 공격이 이뤄지리라 판단하기만 해도 핵을 쓸 수 있다는 뜻이다.
이에 대해 정 전 장관은 정부의 북한 비핵화 로드맵인 '담대한 구상'을 전면적으로 수정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북한이 핵무력을 법제화함에 따라, 비핵화를 전제로 대화를 모색한다는 '담대한 구상'이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본 것이다.
그는 "('담대한 구상'과 마찬가지로 미국이) '핵을 포기하면 잘 살게 해 줄게'라고 했다가 죽은 게 카다피"라며 과거 리비아의 독재자였던 무아마르 카다피 사례도 언급했다. 그는 "미국과의 수교 이후에 반정부군이 생겼다"며 "정부군과 반정부군이 싸우는 와중에 결국 카다피가 피신까지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고, 그 와중에 반정부군에 총에 맞아서 길거리에서 횡사했다"고 했다. 이런 선례가 있기에 '핵을 먼저 포기하면 경제적 지원을 해주겠다"는 우리 정부의 제안을 북한이 받아들여 먼저 포기할 확률은 극히 낮다는 취지다.
따라서 북한과 우호관계인 중국과 러시아와의 외교적 협력이 필요하다는 게 정 전 장관의 설명이다. 2003년 8월 당시 우리나라, 북한,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6개국이 모여 북한의 비핵화를 비롯한 북한의 개방 문제에 대해 논의했었다. 그 후 2년 뒤인 2005년 9월에 북한의 비핵화 및 핵 확산 금지 조약(NPT) 복귀 등을 골자로 하는 9·19 공동성명을 낸 전례가 있다.
정 전 장관은 20일 유엔(UN)총회 연설에 나서는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담대한 구상'을 되풀이하지 말고, '미국이 북한 체제를 붕괴시키려고 할 경우에 중국, 러시아가 막아줄 테니 핵을 포기해라'라는 식의 협상을 시작할 수 있는 어떤 단초를 연설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또 미국과 관계가 좋지 않은 중국과 러시아를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미국과 협의를 해 가면서 (진행)해야 한다"며 "외교력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하고, 그러려면 (국가안보실) 멤버 체인지를 좀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