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오래된 일본 문자'라더니… 유성펜 자국이었다

입력
2022.09.13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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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가장 오래된 문자'설 제기
분석 결과 시판되는 유성펜 성분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일 가능성이 있다고 알려진 유물에 적힌 글자가 유성펜 자국인 것으로 드러났다.

13일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 언론에 따르면 1997년 시마네현 마쓰에시 다와야마 유적에서 출토된 유물에 쓰인 글자가 유성펜의 흔적으로 보인다는 연구 결과가 10일 발표됐다.

길이 9㎝, 폭 7.5㎝, 두께 1.5㎝의 석재 유물은 2005년 조사 당시 야요이 시대(기원전 3세기~기원후 3세기) 때 만들어진 숫돌로 추측됐다. 2020년 2월 기후현에서 열린 학회에서 후쿠오카시 매장문화재과 연구원인 구스미 다케오씨가 벼루일 가능성을 제기했다. 그는 유물 뒷면에 있는 두 개의 희미한 검은 흔적이 먹으로 쓰인 문자일 가능성이 있으며, 각각 ‘아들 자(子)’와 ‘천간 무(戊)’ 자일 수 있다고 추측했다. 사실일 경우 일본의 가장 오래된 문자가 된다면서 언론들이 크게 보도했다. 야나기다 야스오 국학원대 객원교수도 문자처럼 보인다며 “북부 규슈 문화의 전파를 말해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라현립 가시하라 고고학연구소의 오카미 도모키 주임연구원이 나라첨단과학기술대학원과 협력해 과학적으로 성분 조사를 한 결과 엉뚱한 사실이 드러났다. 유물에 특수한 빛을 비추고 산란한 빛의 스펙트럼과 일치하는 성분을 찾았더니, 먹이 아니라 시판되는 유성펜 잉크와 일치한 것이다. 오카미 연구원은 “발굴 조사 후 정리 작업을 하다 실수로 남은 유성펜 흔적 같다”며 “오염됐을 가능성이 있는 유물에 대해서는 성급한 판단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마쓰에시 매장문화재 조사과는 실제로 석재 유물을 정리할 때 출토된 지점을 유성펜으로 적은 꼬리표를 달아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애초 먹으로 쓴 문자일 가능성을 제기했던 구스미씨는 이번 분석 결과에 대해 “과학적 절차를 거쳤으니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며 “재분석을 통해 현대 성분으로 확정되면 (문자라는) 견해는 완전히 철회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 유물이 벼루라는 견해는 사용 흔적이나 형태, 제작 기법 등을 통해 종합적으로 판단한 것이라며 유지하겠다고 주장했다.

도쿄= 최진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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