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납세자 한 명 한 명이 낸 세금으로 만든 내년도 예산안 639조 원. 비현실적인 숫자가 썩 와 닿지 않는다. 나랏돈이 전국팔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필요한 곳에 쓰인다지만 어쩐지 ‘나’만 비껴가는 것 같다. 1원이라도 내 삶을 지원해주는 정부 예산은 없을까. 한국일보가 추석 연휴 때 온 가족이 얘기 나눌 수 있는 우리 곁의 예산 사업을 정리해봤다.
부실 급식 논란이 끊이지 않고 나오는 '군대 짬밥'. 오죽했으면 군대 부실 급식을 고발하는 페이스북 페이지 ‘육군훈련소 대신 전해드립니다’까지 활발하게 운영 중일까. 이에 정부는 내년도 군인 1일 급식비를 1만1,000원에서 1만3,000원으로 높인다. 먹을 것에 민감한 장병들의 사기를 높이기 위한 조치다. 하지만 물가가 고공비행 하는 사이 끼니당 700원 오르는 셈이라 급식의 질이 크게 나아지기 어려울 가능성도 있다.
대신 월급이 풍부해진다. 정부는 병장 기준 월급을 올해 82만 원, 내년 130만 원, 2025년 205만 원까지 올릴 계획이다. 군 간부 처우도 개선한다. 장교, 부사관의 단기복무장려금을 각각 600만 원→900만 원, 500만 원→750만 원으로 50% 높인다. 또 소대장 활동비는 병사 1인당 3만 원에서 6만 원으로 상향하고 1인 1실의 간부 숙소를 3,331개 추가한다.
청년들이 부동산 과열 때 영끌(영혼까지 끌어 모은) 대출을 했다면, 이젠 영끌 저축이다. 정부가 내년 하반기 목표로 출시 예정인 청년도약계좌는 본격 저축 장려 상품이다. 만 19~34세 청년이 월 40만~70만 원을 납입하면 정부가 최대 6%(70만 원 입금 시 4만2,000원)를 보태준다. 당초 10년 '1억 통장' 공약보다는 후퇴했지만 목돈 마련에 유용할 전망이다.
이자 소득에 대한 세금도 떼지 않아 5년 만기를 채울 경우 최대 5,000만 원까지 모을 수 있다. 단 대상은 연 소득 6,000만 원 이하, 가구소득 중위 180% 이하로 제한을 뒀다.
기초생활보장 제도를 이용 중인 저소득층은 지원금이 늘어난다. 형편이 가장 열악한 가구가 받는 생계급여(4인 기준)는 월 최대 154만 원에서 162만 원으로 높아진다. 교육급여 교육활동 지원비 역시 △초등학생 33만1,000원→41만5,000원 △중학생 46만6,000원→58만9,000원 △고등학생 55만4,000원→65만4,000원으로 오른다.
지원액을 높이는 동시에 대상도 넓힌다. 생계급여, 의료급여 주거 재산 한도를 각각 1억2,000만 원, 1억 원에서 모두 1억7,200만 원으로 올린다. 아울러 주거급여 선정 기준도 중위소득 46% 이하에서 47% 이하로 완화한다. 의료비가 가구 소득 대비 과도하게 많을 경우 받는 재난적 의료비 사업 대상도 연 소득의 10% 이상을 의료비로 쓰는 환자로 확대한다.
정부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요구한 장애인 이동권 예산을 일부 반영했다. 장애인이 상대적으로 올라타기 쉬운 저상버스를 2,300대에서 4,300대로 늘리고 장애인콜택시 이동지원센터 운영비도 처음으로 국비를 지원한다.
발달장애인 가족의 돌봄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주간활동서비스는 월 125시간에서 154시간으로 늘어난다. 평일 낮 시간 동안은 국가가 발달장애인을 돌보겠다는 구상이다. 보호자가 갑자기 숨졌을 경우 등 긴급 상황 발생 시 발달장애인을 최대 일주일 동안 보호해주는 긴급돌봄 기관도 40개를 새로 만든다.
내년 만 0~1세 자녀를 키우는 가구는 월 35만~70만 원의 ‘부모급여’를 받게 된다. 출산·양육에 따른 경제적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예산으로, 어린아이를 양육하는 부모에게 1년간 월 100만 원의 부모급여를 지급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공약이 반영됐다.
정부는 올해 영아수당 명목으로 만 0~1세 아동이 있는 가구에 월 30만 원을 지급하는데, 내년부턴 부모급여 도입으로 지원 액수가 늘어난다. 만 0세를 양육하는 가구에는 월 70만 원, 만 1세 양육 가구에는 월 35만 원을 지급한다. 2024년부터는 공약대로 만 0세는 100만 원, 만 1세는 50만 원으로 부모급여가 확대된다. 예산 규모는 1조6,249억 원이다.
사업주에게 육아휴직과 육아기·가족돌봄 근로시간 단축 지원금을 확대, 육아휴직자와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급여 대상자를 확대한다. 정부는 최대 1만 명까지 늘어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육아기 근로시간 단축급여는 만 8세 이하 또는 초교 2학년 이하 자녀를 둔 근로자가 육아 때문에 일하는 시간을 줄였을 때 이로 인한 소득 감소분을 지원하는 제도다.
출산 후 산모와 영아에 대한 건강관리 서비스와 우울증을 겪는 난임부부를 위한 난임상담센터도 확대(5개→7개)하고, 국공립 어린이집은 장애아동 전문 어린이집 2곳을 포함해 35개소를 추가 건립한다. 리모델링과 장기 임차를 통해 기존 민간·가정 어린이집을 국공립 어린이집으로 전환해 공공보육 인프라 540개를 추가 확보할 계획이다.
노인 기초연금 지원대상이 628만 명에서 665만 명으로 약 30만 명 확대된다. 지원금액도 현재 월 30만8,000원에서 내년 32만2,000원으로 인상된다. 40만 원으로 올리겠다던 윤석열 대통령 공약에는 못 미치지만, 내년 관련 예산 증액 규모는 2조4,164억 원에 달한다. 은퇴한 노인의 안정적인 생활을 위해 민간·사회 서비스형 일자리 사업도 기존 23만7,000개에서 27만5,000개로 늘린다.
이와 함께 정부는 취약계층 노인 돌봄을 위한 사회 서비스도 확대했다. 일상생활이 어려운 노인과 독거노인에게 가사지원, 활동지원 등 맞춤형 복지를 제공하는 노인맞춤돌봄서비스 대상자를 5만 명 확대(50만 명→55만 명)하고 요양시설엔 폐쇄회로(CC)TV 6,000개를 설치하기로 했다. 노인요양시설에서 왕왕 이뤄지는 노인 학대를 막기 위한 조치다. 치매전담 노인요양시설 8개소를 신축하고, 6개소를 증·개축한다.
농어촌 분야에서 크게 바뀌는 신규 예산안은 직불금 추가 지급이다. 앞서 문재인 정부는 2020년 기존 쌀·밭·조건불리 직불제 등을 통합한 공익직불제를 도입하면서 ‘2017~2019년 직불금을 1회 이상 수령했던 농지’에 한해서만 직불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종전에 직불금을 신청하지 않았던 농민은 직불금을 받지 못해 반발이 계속됐으나, 농림축산식품부는 한정된 예산을 이유로 제도 개선에 소극적이었다.
윤석열 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농업직불금 제도를 개편, 그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던 56만 명에게도 직불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내년 예산안에 3,000억 원을 반영했다.
수산직불금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던 영세 소규모 어민과 어선원에 대한 직불금도 신설했다. 512억 원을 편성해 4만7,000명의 영세 어민에게 연간 120만 원의 직불금을 지급한다. 대선 후보 시설 윤 대통령은 농업직불금 예산을 5조 원으로 두 배 늘리고 실경작자에게 직불금을 지급하겠다고 공약했다.
재해로 인한 농작물 보상도 확대된다. 농업재해보험 품목에 해당되는 농작물을 확대(67개→70개)하기 위해 4,686억 원을 반영한 것이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인한 농가 생산비 부담을 줄이고자 비료가격 인상분 80%를 할인해 판매(1,000억 원 배정)하고, 총 1조 원 규모 사료 구매자금을 저금리(1.8%)로 제공한다.